음....기승전결 전부 회쳐서 "결"만 이야기하자면(...이럴 때의 내 말투는 조금 거칠어지곤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자신이 모른다는 걸 목소리 높여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일이다."
중앙일보 편집과정에서 저 비평이 좀 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라카미현상이라....일본의 무라카미 현상을 지칭하겠다는 거라면 일단 일본에서의 무라카미 현상은 무라카미"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같이 지칭하는거라는 것부터 걸고 넘어지겠지만...뭐, 이건 넘어가고.
"‘노르웨이의 숲’은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 ......이라.
고급문학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모르겠으나,(사상이 풀풀 녹아들어있는 것이나 그런 걸 뜻하지는 않겠지) 한 허드레 대중문학에게 밀려 죽을 지경이라면 그런 고급문학에 가치가 있을까?
문학-문화는 최고급 고기와 잠자리와 미용을 대접해야하는 애물단지 값비싼 애완견이 아니다. 문화에는 경쟁력이 있고 생명력이 있다. 아무리 천박해 보이는 의상을 걸치고 나와 허리와 힙과 바스트를 흔들어 대는 3류 댄스음악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 성악이 죽고, 새로운 걸작 오페라가 탄생하지 못하는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필멸"할 지언정, "위대한 것"은 쉽게 죽고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본 바로는 “성적으로 격리된 수용소 재소자들이 일상적으로 나눔직한 성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고 밝혔다. 유 씨는 이 작품 속에 “성적인 문제로 좌절이나 일탈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고 성적 호기심을 부추기는 성적인 얘기가 전경화되어 있고, 고교 3년 여학생의 자살을 위시해서 수수께끼 같은 자살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ㅡ_ㅡ 젊은 시절 성적인 고통(욕구불만이 아닌)으로 고민하지 않아 본 사람이 더 드물거라고 생각되는데... 성은 자아가 개인을 나누듯 역시 나와 남을 나누고 동시에 결합해야 하게 만드는 하나의 울타리이다. 성교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성적인 요소에 의한 만남(설령 손만 잡고 놀 거라도 미팅을 하고 데이트를 하지 않는가?)이 존재하고, 또한 남에게서 숨길 수는 있어도 도망 갈 수 없는 것이 성이 아니던가.
또한 자살 역시 수많은 청춘이 격게되는 괴로움이며 유혹이다. 생활고에 의한 자살은 고령에게서 더 많을지 몰라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에 의해 선택하는 청소년-청년기의 문제는 기실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내가 보기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후 시대를 겪은 당 평론가가 "전공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함에서 생기는 이해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이 소설은 애당초 일본에서의 전공투세대, 그리고 그 이후의 우리나라 사람들 세대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보다 "자기 자신의 갈등에 대한 문제"를 안고 살았던 세대 말이다.
“소설의 화자가 대학생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는 등 등장인물들이 다소간 학교교육의 피해자 내지는 희생자란 함의를 풍기고 있다”며 “요컨대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씌어진, 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읽지요. 좋을대로 몇부분만 골라내지 말아주시길.ㅡ_ㅡ 학교생활이 허무하고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는다해서 함의를 풍긴다니..."살인의 추억" 시절의 경찰들이 할 소리로군요. 학교생활이 허무했던건 주인공이 마음을 다잡지 못해서 그랬을 뿐이고, 주인공의 책 선택기준은 그저 주인공의 취향일 뿐이다. 앞서가지 마시길 바란다. 또한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가장오래된 판본으로 남아있는 격렬하고 과격한 음담패설집인 [춘향뎐]을 추천해드리고 싶다.게다가, 읽기 쉽게 쓰면 안된다는 말인가? 어렵게 써야 한다니.... 상당히 오만하시기까지.
유 씨는 한편으로는 “작가가 이미 사회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상실했거나 예술적 포부를 가질 수 없는 시대의 언어 상품”이라며 작품을 낳은 시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무라카미가 거둔 상업적 성공을 비하하거나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 “다만 그의 문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이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하급문학일 뿐”이라고 말했다.
“상당수의 대학생이 문학적 위엄을 보여 주는 고전을 제쳐놓고 ‘노르웨이의 숲’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해서, 곤혹스럽고 우려가 되어 글을 쓰게 됐다”
작가가 사회적 엘리트? 곧, 자신이 사회적 엘리트시라는 뜻인가? 매우 오만하시다. 나는 솔직히 이 비평의 탈을 쓴 욕설을 가지고 당신을 "먹물"로 밖에는 인정 못해주겠는데.
문학의 이상이 무엇인가? 하급이니 고급이니 하는 말로 문화의 다양성을 거세하는 것인가?
문화-컬쳐의 어원은 농사짓다-콜투어-에서 나온 것이다. 당분간 일 안해도 먹고 살 식량이 쌓여있고(그렇지 않았다면 힘들게 일년 동안 농사 지을리도 없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할일 없어 심심하고... 그래서 발달한게 문화라는 말이다.(물론 이전에도 문화는 존재했다. 다만, 그 최초의 문화 역시 "사회적인 규약"을 만들고 통용했을 정도의 삶의 여유가 있었기에 발생하고 발달한 것이다.)
결국 문화의 가치는 "재미"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모든 유머는 심오함을 간직한다"라는 저 격언을 생각해보라. 심오한 그 무엇을 잡아낸 것이 유머라면 심오함이란 것은 재미를 내포한다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바른 문화의 가치는 바로 그 심오함을 잘 잡아낸 재미라는 것이다. 곧, 많은 시간이 지나도 무디어지지 않으면서도 인정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재미말이다. 물론 단순하고 말초적이기만 한 재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식탁에서 이야기하자면 자극적인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스낵일 뿐이니까. 그러나 어렵게만 쓰여진 문학이란 것은 지적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대가의 일생이 들어간 대작은 우리에게 찌푸린 얼굴만 줄지도 모르지만 어느 만화가의 핵심을 잡아낸 낙서 한장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위엄이라는 포장을 둘러야만 위대해지고 훌륭해 질 수 있다면 그 고급문학이라는 것은 실로 공작의 깃털로 치장한 까마귀만큼 빈약한 것이 아닐까 싶어지는 밤이다.
그리고.... 자기가 이해못한다고해서 깎아내리는 건 "평론가"라는 사람이 할짓은 아니잖은가. 아니 외려 평론가 실격이지(이해도 못하면서 뭘 비평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