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동안 알고 지낸 경수로부터도 "네 장편은 지루하다"라는 소리를 듣고,
9년 동안 알고 지낸 창수형에게서도 "네가 무슨 소재를 선택하든 그런 류의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 패턴정도야 뻔히 꿰뚫어보기 때문에 의미 없다"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사실 저 두마디가 절필을 생각하게된 제일 큰 계기인지도 모르겠다.
뭐, 확실히 어디 출품할 것도 아닌 소설이랑 쓰고 있던 소설까지 다 지웠으니까 말이지. 조금 충격도 있었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뭐, 다른 건 몰라도 아무리 내가 지루하고 뻔한 소설을 쓴다해도 그게 정말 뻔할리는 없다.
당연하지.
그래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창수형이나 경수가 좋은 독자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시놉시스만 보고 내 소설을 '알고있다'고 할 수 있을까?
뻔한 소설이라고 소설의 앞을 내다보려해도 소설 자체를 제대로 읽기 전엔 알 수 없는 거지.
사실 작품이 뻔하다고 하려면 적어도 '작품을 읽고 있어야'하는 것이고, 그것은 이미 '알고 난 뒤에야' '알고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주1))

하나의 패러독스랄까.
내가 정말 뻔한 것 밖에 못쓴다면, 내가 쓴 글을 읽고 나와 친분이나 면식이 없으면서, 나와 관계없는 상황에서
내 소설을 좋다고 해준 사람들은 정말 소설도 잘 모르는 우자들이겠지.

내 소설이 재미없을지는 몰라도 킹 오브 편집자니 킹왕짱 비평가니하는 "모든 작품을 잘 아는 신"처럼 구는
인간들이 트럭으로 몰려와도 강약약강중약하는 식으로 패턴을 파악한 것처럼 구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작가의 의도는 작가에게 밖에 없으니까.(주2))

결론 : 내가 절필했다고 해서 그동안 내 글들을 읽은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기억을 지울 필요는 없다.
그동안 쓴 소설들 재미없고 뻔한 내용이었다고 한다면 "뻔한데 왜 읽었냐?"라고 해주면 되는거지.

뭐, 그렇다고 절필 캔슬 놓을 생각은 적어도 당분간은 없다. 공부해야지. 덤벼라 형소법. 싸우자 교정학.

P.S 음.... 몇가지 오해를 살만한 표현이 있는 듯 하여 보충.
주1) 일단 내 머릿속에 있는 소설이 편집자들이나 독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하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파우스트에 기고 했을 때에도 A4용지 두페이지 이내의 시놉시스와 주제, 소재를 함께 보내게 되어있고,
또 소설을 사도 흔히 시놉시스나 소재,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띠지나 책 뒷표지에 쓰여있게 마련이죠.
그런 식으로 "이미 써 놓은 소설"이라도 완전히 다 읽기 전에 얻은 시놉시스, 소재와 주제에 대한 정보만으로
그 소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다. 라는 이야기죠. 결론에서 반문은 그런 뜻.
변명을 조금 더 하자면 창수형한테 저 소리 들었을 때가 어번 레전드 체이서 1화 분량을 쓰고 2화 준비하던 시기에
도시전설사냥하는 만화가 있길래 이야기 하다 들은 소리니까 사실 저 경우도 머릿속에 있던 소설은 아닌셈.
.....뭐 스트로보백이고 뭐고 쓰던건 다 지웠지만


주2)음 이건 예전 초단편으로 썼던 소설을 예로 든다면 쉽겠네요. 제가 예전에 무관심의 거리라는 단편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게 꽤 재미있었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레저드 형님이 그때 길게 풀어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었는데 저는 아니라고 했었죠. 저는 그 소재가 초단편에 어울린다는 의도에 의해서 쓴 것이었고,
또한 제가(적어도 그 때 실력의 제가)길게 풀어서 쓴다면 오히려 재미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 저 자신에게
확실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레저드 형님의 말대로 했어도 좋은 글이 되었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저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뭐, 그런 뜻입니다.

주변의 절친한 사람들의 충고는 분명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런 평 한 둘에 휘말려서 침울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 좀 다잡으려고 쓴 글인데 설명이 부족해서 였는지 글이 좀 오해를 낳는 것 같습니다.
(음..... 결국은, 힘내라! 나!라는 글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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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피의 잉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