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에게(굽시니스트)
우리 사회는 정말 분노의 도가니인가.....
만화가 전하는 바 같은건 다 떼어놓고, 누구의 잘못이니 이용을 당했느니 하는 것도 다 떼어놓고(떼어놓으면 이야기가 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랫글에서도 말했듯이 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말한 부분이니 생략하겠다.)
.........대체 왜 그렇게 작가의 의도 어쩌구를 중의적으로 해석수 있네 없네 싸우는 거야.
....정말 미안하지만,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완전하게 해석해낼 수 없다.
작품의 의도, 혹은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조언, 혹은 감동, 혹은 교훈은 모두 "독자의 것"이다.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생각난다.(아마 산왕님 블로그에서 읽었던 거 같은데.)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소설<반딫불의 묘>에서 오빠가 동생을 묻어주는 장면에서 작가의 심상을 써오라 했는데,
그 숙제를 받은 학생 중 하나가 바로 그 작가의 딸이어서 아버지에게 그 장면을 쓰면서의 심정이 어땠느냐고 물어보고는
적어서 갔더니 낙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작가의 대답이 바로 [마감에 쫓겨서 필사적이었다]였기 때문에.
결국 그런 것이다.
작품은 대개 묽은 스프, 혹은 밍밍한 설렁탕이다.
독자가 읽으면서 비로소 작품엔 소금이 쳐지고, 후추가 뿌려지고, 다대기나 갈은 마늘을 넣기도 하고,
때로는 면이나 밥을 추가하기도 하게 된다.
같은 글을 봐도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 독자들이 조미료를 첨부한 탓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그러하다면 작가의 변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문학의 해설론따윈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작품의 해설이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생각하는게 정답"이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독자보다 글을 좀 더 잘 읽는
사람에겐 이렇게 비칠수도 있다"라는 견해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그 어떤 작품이건 사람은 주관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작품의 이해-해석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이츠의 하늘의 천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당신]을 현실 그 자체로도, 어떤 절대적 연모의 대상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그대에게 깔아드리는 내 꿈은 현실 앞에, 혹은 사랑 앞에 포기하는 이상일 수도, 반대로 연모의 대상에게
헌정하는 이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육사의 초인도 마찬가지. 천년 후의 초인이 [그 천년 사이에 이미 일어난] 해방후에 오는 자 일수도 있고,
천년 후에나 이루어지는 해방일 수도 있다.)(요 전자의 해석은 레저드 형님의 해석)
어떤 작품의 감동이건 교훈이건, 그 모든것은 읽고 판단한 당신의 것이다. 당신이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
아무리 비슷한 상상을 하더라도 당신의 나오코와 나의 나오코는 다른 인물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작품도 재미가 있을까?
누구의 해석이 맞네가 아니라, 그 안에 금과옥조가 있다면 받아들이고, 아니다 싶으면 자신의 믿는 길을 가라.
누구도 당신에게 난독증이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네 없네 하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우리 사회는 정말 분노의 도가니인가.....
만화가 전하는 바 같은건 다 떼어놓고, 누구의 잘못이니 이용을 당했느니 하는 것도 다 떼어놓고(떼어놓으면 이야기가 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랫글에서도 말했듯이 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말한 부분이니 생략하겠다.)
.........대체 왜 그렇게 작가의 의도 어쩌구를 중의적으로 해석수 있네 없네 싸우는 거야.
....정말 미안하지만,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완전하게 해석해낼 수 없다.
작품의 의도, 혹은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조언, 혹은 감동, 혹은 교훈은 모두 "독자의 것"이다.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생각난다.(아마 산왕님 블로그에서 읽었던 거 같은데.)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소설<반딫불의 묘>에서 오빠가 동생을 묻어주는 장면에서 작가의 심상을 써오라 했는데,
그 숙제를 받은 학생 중 하나가 바로 그 작가의 딸이어서 아버지에게 그 장면을 쓰면서의 심정이 어땠느냐고 물어보고는
적어서 갔더니 낙제를 받았다고 했다.
그 작가의 대답이 바로 [마감에 쫓겨서 필사적이었다]였기 때문에.
결국 그런 것이다.
작품은 대개 묽은 스프, 혹은 밍밍한 설렁탕이다.
독자가 읽으면서 비로소 작품엔 소금이 쳐지고, 후추가 뿌려지고, 다대기나 갈은 마늘을 넣기도 하고,
때로는 면이나 밥을 추가하기도 하게 된다.
같은 글을 봐도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 독자들이 조미료를 첨부한 탓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그러하다면 작가의 변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문학의 해설론따윈 필요치도 않을 것이다.
작품의 해설이 필요한 이유는 "이렇게 생각하는게 정답"이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독자보다 글을 좀 더 잘 읽는
사람에겐 이렇게 비칠수도 있다"라는 견해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그 어떤 작품이건 사람은 주관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작품의 이해-해석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이츠의 하늘의 천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당신]을 현실 그 자체로도, 어떤 절대적 연모의 대상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그대에게 깔아드리는 내 꿈은 현실 앞에, 혹은 사랑 앞에 포기하는 이상일 수도, 반대로 연모의 대상에게
헌정하는 이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육사의 초인도 마찬가지. 천년 후의 초인이 [그 천년 사이에 이미 일어난] 해방후에 오는 자 일수도 있고,
천년 후에나 이루어지는 해방일 수도 있다.)(요 전자의 해석은 레저드 형님의 해석)
어떤 작품의 감동이건 교훈이건, 그 모든것은 읽고 판단한 당신의 것이다. 당신이 [상실의 시대]를 읽을 때,
아무리 비슷한 상상을 하더라도 당신의 나오코와 나의 나오코는 다른 인물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작품도 재미가 있을까?
누구의 해석이 맞네가 아니라, 그 안에 금과옥조가 있다면 받아들이고, 아니다 싶으면 자신의 믿는 길을 가라.
누구도 당신에게 난독증이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네 없네 하는 말을 할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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