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악몽을 꿨다.
내 경우 악몽의 패턴은 대개 비슷한데, 나쁜일 그 자체 보다도 작은 트러블(물론 중요도는 높은)이 그 꿈의 주가
되는 것 같다.
총격전에 휘말렸는데 펌프액션식의 샷건이 탄피 배출 불량으로 잼이 난다던가, 무언가와 싸워야하는데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 처럼 도통 손발에 속도가 안 붙는다던가 하는 것들이 주가 되고는 한다.
프로이트나 융이 말하는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볼 때, 나는 그런 작고도 중요한 무언가에서 꽉 막힌 남자인 것일까.
내가 고교생이었을 때, 아버지는 나를 일컬어 냉정하다고 했었다. 그것이 어떤 뜻이었는가는 이제 와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가 냉혹하다거나 차가운 남자라는 뜻으로 말한게 아니었다.
나는 감정이 부족한 사람이다. 다들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감정이라는 것은 내 안에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가 이어지면서 내 안에 고이는 빗물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든 뒤, 홀로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면대의 거울 앞에서, 심지어는 헤어져 등을
돌리자마자 무표정하게 굳어져버리는 내 얼굴을 자각하고는 한다. 나에겐 감정의 여운이라는 것을 보존하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다. 아버지는 그렇게 핵심을 너무나 예리하게 지적해서 꿰뚫고 지나가버린 지적을 한 것이었다.
좀 더 따듯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더이상 그런 악몽은 꾸지 않게 되는 걸까?
아직도....
이상은 멀었고,
꿈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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