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8 22:55 :: 낙서(혹은 일기)
뭐, 사실은 아시는 분만 아시겠지만, 저는 폭력을 싫어합니다.
아픈 것도 싫고, 아프게 하는 것도 싫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답답한 사람을 보더라도
주먹보다는 말로 해결하려고 언제나 노력합니다. 그래서 해결은 안되도 주먹은 쓰지 않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액션만화를 싫어한다거나, 칼이나 총을 싫어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외려 좋아합니다. 잠입 액션 시리즈인 메탈기어 시리즈도 좋아하지요.
그렇지만, 언제나 필요 이외의 폭력은 반대합니다.
요즘의 제 또래 전후로 아이들이 보다 폭력적이고 도전적(추구할 만한 가치에의 도전이 아닌)이
되는 가에 대한 원인으로 추정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 "폭력에의 저항감 축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렇다고 폭력 만화나 게임이 문제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만화라도, 그것을
보기로 결정한 사람에게 그 것에 물드는가 마는가의 책임이 주어지게 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말단"에서 찾을 수 있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폭력은 간단히 말하여, "타인에의 유체적, 정신적 손상을 도모하는 침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겪고 싶지않은, 방위적 충동에 의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 충동을 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최근에 들어 폭력행사에 대한 저항감이 축소 되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저는 사회의 변화가 세상을 그리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비약하자면, 이기주의에 가깝겠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점이라면 저는 타인에 대한 침해에 대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침해하는 일은 타인에게 손상-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며, 자신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싫을 것을 알기에 그것을 존중한다면 그것은 개인주의입니다. 이빨을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남을 물지는 않죠. 방어적입니다.
그러나, 이기주의는 어떤가요? 자신의 만족과 방위를 위해서라면 남을 침해하는 데에 일말의
주저도 없게됩니다. 후배 연예인은 자신의 인기를 위해 토크쇼에 끌어들여 내리깎아 바보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전의 서세원 쇼가 생각나는 군요. 이웃이 냄새에 골치를 겪건 말건, 자신의
쓰레기를 이웃의 집앞에 내버립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들켜도 무시합니다.
바로 이런 이기주의의 요소에 들어가는 행동의 요소가 우리를 폭력적으로 만듭니다.
나를 위한 폭력이 사회적으로 퍼지면서 그 거대한 물결은 사회적 의식에서 말단의 인간의식
표출이랄 수도 있는 문화를 통해 보다 눈에 띄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소룡 시절의 액션영화의 대부분은 "아픔"이란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적을 죽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죽이기도 하는 일입니다. 베트남에서 적을 학살해버린 주인공은 자신의
내부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원한 관계의 적 조직에 뛰어들어 조직을 붕괴시켜버린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떨리는 피투성이 손으로 담배 한개비를 물어 죽어갑니다.
지금의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은 어떤가요?
조금씩 다르겠지만 참으로 "압도적"이더군요.
팔힘으로 따지면 팔굽혀 펴기도 힘들것 같은 가녀린 미소녀가 장도를 들고 예쁘게 웃으며
학살을 벌입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것 같지만, 주인공은 상처따윈
무시하고 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갑니다. 이들이 무언가를 조금씩 잃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대부분은 엔딩에서, 혹은 다음작에 나올 때 즈음해서는 손에 박힌 가시만도 못한
상처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남의 상처에 공감하는 아픔을 잊어버린겁니다.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의 감성이
반드시 원해서 몰입하는 경우를 빼고 말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사실은 남이 상처를 받든 받지않든 신경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신"이
있으니까요.
어떤 분께서는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픈거 보면 나도 괴롭고 아프다!라는 식의 말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공유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당신 스스로
친밀감을 비교적 느끼고 있는 대상입니다. 전쟁 영화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한 적병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친근한 대상이 아니었다하더라도 아픔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사이엔가 우리에겐 아픔보다, 남에게 아픔을 주어도 아무렇지 않은 자신이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있었을 겁니다. [욕심]이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남의 아픔을 무시하는 의식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지금의 문화, 그것이 포함하는 영화, 만화, 게임 등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폭력은 결국
그런 사회 의식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회 의식을
다시 문화에서 확인받습니다. 결국 이 과정을 돌고 돌고 돌며, 그런 아픔의 부재는 점점 더
심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이끄는 걸까요.
지금이라도 당신 주변의 아파하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는 않겠습니까?
당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아파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한번 바라봐 주세요.
그들이 아파한다면, 당신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들을 아프게 한다면, 당신도 같은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대등한]존재로 타인을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아픔을 줄여갑시다.
아픈 것도 싫고, 아프게 하는 것도 싫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답답한 사람을 보더라도
주먹보다는 말로 해결하려고 언제나 노력합니다. 그래서 해결은 안되도 주먹은 쓰지 않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액션만화를 싫어한다거나, 칼이나 총을 싫어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외려 좋아합니다. 잠입 액션 시리즈인 메탈기어 시리즈도 좋아하지요.
그렇지만, 언제나 필요 이외의 폭력은 반대합니다.
요즘의 제 또래 전후로 아이들이 보다 폭력적이고 도전적(추구할 만한 가치에의 도전이 아닌)이
되는 가에 대한 원인으로 추정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이 "폭력에의 저항감 축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그렇다고 폭력 만화나 게임이 문제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폭력적인 만화라도, 그것을
보기로 결정한 사람에게 그 것에 물드는가 마는가의 책임이 주어지게 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말단"에서 찾을 수 있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폭력은 간단히 말하여, "타인에의 유체적, 정신적 손상을 도모하는 침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겪고 싶지않은, 방위적 충동에 의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 충동을 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최근에 들어 폭력행사에 대한 저항감이 축소 되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저는 사회의 변화가 세상을 그리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비약하자면, 이기주의에 가깝겠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점이라면 저는 타인에 대한 침해에 대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침해하는 일은 타인에게 손상-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며, 자신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싫을 것을 알기에 그것을 존중한다면 그것은 개인주의입니다. 이빨을 드러내는 한이 있어도
남을 물지는 않죠. 방어적입니다.
그러나, 이기주의는 어떤가요? 자신의 만족과 방위를 위해서라면 남을 침해하는 데에 일말의
주저도 없게됩니다. 후배 연예인은 자신의 인기를 위해 토크쇼에 끌어들여 내리깎아 바보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전의 서세원 쇼가 생각나는 군요. 이웃이 냄새에 골치를 겪건 말건, 자신의
쓰레기를 이웃의 집앞에 내버립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들켜도 무시합니다.
바로 이런 이기주의의 요소에 들어가는 행동의 요소가 우리를 폭력적으로 만듭니다.
나를 위한 폭력이 사회적으로 퍼지면서 그 거대한 물결은 사회적 의식에서 말단의 인간의식
표출이랄 수도 있는 문화를 통해 보다 눈에 띄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소룡 시절의 액션영화의 대부분은 "아픔"이란게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적을 죽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죽이기도 하는 일입니다. 베트남에서 적을 학살해버린 주인공은 자신의
내부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원한 관계의 적 조직에 뛰어들어 조직을 붕괴시켜버린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떨리는 피투성이 손으로 담배 한개비를 물어 죽어갑니다.
지금의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은 어떤가요?
조금씩 다르겠지만 참으로 "압도적"이더군요.
팔힘으로 따지면 팔굽혀 펴기도 힘들것 같은 가녀린 미소녀가 장도를 들고 예쁘게 웃으며
학살을 벌입니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것 같지만, 주인공은 상처따윈
무시하고 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갑니다. 이들이 무언가를 조금씩 잃는 것 같지만 사실
그 대부분은 엔딩에서, 혹은 다음작에 나올 때 즈음해서는 손에 박힌 가시만도 못한
상처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아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남의 상처에 공감하는 아픔을 잊어버린겁니다.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의 감성이
반드시 원해서 몰입하는 경우를 빼고 말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사실은 남이 상처를 받든 받지않든 신경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자신"이
있으니까요.
어떤 분께서는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아픈거 보면 나도 괴롭고 아프다!라는 식의 말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공유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당신 스스로
친밀감을 비교적 느끼고 있는 대상입니다. 전쟁 영화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한 적병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친근한 대상이 아니었다하더라도 아픔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사이엔가 우리에겐 아픔보다, 남에게 아픔을 주어도 아무렇지 않은 자신이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있었을 겁니다. [욕심]이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남의 아픔을 무시하는 의식이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지금의 문화, 그것이 포함하는 영화, 만화, 게임 등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폭력은 결국
그런 사회 의식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회 의식을
다시 문화에서 확인받습니다. 결국 이 과정을 돌고 돌고 돌며, 그런 아픔의 부재는 점점 더
심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이끄는 걸까요.
지금이라도 당신 주변의 아파하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지는 않겠습니까?
당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아파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한번 바라봐 주세요.
그들이 아파한다면, 당신도 아플 수 있습니다.
그들을 아프게 한다면, 당신도 같은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대등한]존재로 타인을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아픔을 줄여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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