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단어인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건事件이 발현하면 그 순간 그것은 현실과 결합하여 사실이 된다. 사실은 시간상에서 사건이 일어난 그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事實은 또한 史實이다. 따라서 사실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시간상에서 과거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의 가치는 사실이라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다.
단면적인 것은 받아들이기 쉽고, 쉽게 변색되지 않지만 그것이 위험하거나 하지는 않다.
이미 일어난 것이고 그것은 그냥 그랬을 뿐이기 때문이다. 먼 과거에 초식공룡이 육식공룡에게 잡아먹혔다고 지금 뭐가 바뀌진 않는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떨까?
"사실은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체야. 단 하나지. 하지만 사람마다 진실은 달라."(동경바빌론/스메라기 호타루)
동경바빌론의 호타루는 이렇게 말했지만 정확하게는 다르다. 단순히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진실이 갈리는 것이 아니다. 단,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맞다.
사실이 사건이 시간상에서 가지는 단면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은 단수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과를 모두 거슬러 올라가보자.
살인자가 살인을 했다.(정확히는 살인을 해서 살인자가 되지만)
그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환경적 심리적 요인등이 있을 것이다. 유전적 요인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모든 요인에는 또 그 요인들의 요인이 있다. 가정에서 핍박받고 학교에서 왕따 당햇다면 자식을 핍박하는 부모가 된 이유들이 있을 것이고, 왕따를 하는 아이들이 그리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같지만 정보량에서는 그 수준이 달라진다.
영향을 주는 관련 있는 정보끼리의 연결은 실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도 한정되어 있고, 이는 모든 이마다 그 격차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정면 얼굴을 기억하지만 당신 옆의 사람은 당신의 옆얼굴로 당신을 기억하듯이.
따라서 진실은 단수-단면일 수 없게 된다. 더더군다나 그 방대한 정보에는 받아들이려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정보도 있게 마련이다.
엄마 어디 갔냐고 묻는 아이에게 "네 어미는 널 임신하고는 낙태하려다가 실패하고 너 낳고서 실의에 빠져 살다가 새 기둥서방 만나서 도망갔다"라고 말해 줄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닌가.
원래 순수한 진실은 사람을 상처입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편집되고 첨삭된 진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소총을 소형화한 단발단총의 등장으로 권총은 이후 결투용(그만큼 명중시키기 힘들었단 이야기도 됩니다;), 자결용, 최후의 일격용 등으로 사용되다가 별개적인 탄환의 개념으로(보다 정확히는 뇌관의 등장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연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현재의 탄환은 탄두, 탄피, 뇌관(점화용 화약), 화약(발사용 화약)으로 구성되며 고폭발물인 뇌관개념의 등장으로
이전에 쓰던 점화접시가 사라지고 보다 간단히 총을 쏠 수 있게 된 것이죠. 전에 본 것으로는 목사가 도입한 개념이라던데...
어딜가나 지식인은 무섭네요.
권총은 일반적으로 핸드건이라고들 하는데 뭐, 요즘엔 일단 건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권총을 뜻하는 일이 많아지긴 했습니다.
(미국 군대 영화 보면, 흔히 라이플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남자의 생식기를 건이라고 하고 소총은 라이플이라고 면박주면서 가르치는
장면도 종종 나오더군요.) 뭐, 머신건이라던가 미니건이 있어서 무조건 권총만은 아니니 핸드건이 옳은 말이겠습니다.
이 핸드건에는 크게 두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탄창이 회전하면서 탄환의 순서가 바뀌는(탄창이 곧 약실이 되는) 리볼버와
이른바 자동권총이라고도 불리는 피스톨이죠. 물론 또 피스톨과 핸드건이 서로 정확히 어떻게 구분되느냐 하는 언어적인 고찰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만, 현재는 회전탄창식의 리볼버, 그리고 그 외의 권총을 피스톨이라고 부르는 경향이다라는 정도로만 설명하지요.
리볼버...는 많이들 보셨겠지만 탄창(실린더)이 회전한다는 특징이 제일 큽니다. 재장전 방식은 스윙도어처럼 실린더가 옆으로
회전하면서 빠지는 타입, 총을 ㄱ자로 꺾어서 재장전하는 타입, 유명한 콜트 SAA의 실린더 뒤의 마개를 열고 재장전 막대로
밀어서 쓴 탄환을 빼고 다시 하나하나 채워 넣는 타입 그리고 지금은 거의 없지만(거의...라는건 골동품 소유자가 있을지도
몰라서;;)실린더가 아예 통째로 빠지는 타입 등이 있습니다. 실린더가 통째로 빠지는 경우엔 또 재미있는 특징이....
탄피가 없습니다. 실린더의 뒤쪽엔 뇌관 캡을 끼우고, 건파우더를 넣고, 맨 앞에는 탄두를 넣은 후 기계로 누릅니다.
아마 라이트노벨[키노의 여행]에서 주인공이 쓰는 권총 하나도 이 방식이던 걸로 기억되네요.(뭐 거의 실존하는 총기니까)
서부시대엔 탄환의 주조나 총탄의 제조를 개인이 직접하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이런 방식도 가능했던 거겠지요.
뇌관 불량인 탄피가 많았던 탓도 있겠고..
피스톨, 우리나라에선 예전에 흔히 자동권총이라고 했는데... 제일 유명한 총 중 하나로는 주윤발로 유명해진 베레타.
45구경으로 이름높은 싱글액션 권총 콜트 시리즈 등이 있죠. 자동 권총 중엔 정말 기관총처럼 자동연사가 되는 권총도 있습니다.
기관권총이라고 하지요. 여기서 기관권총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일단은 싱글액션과 더블액션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군요.
피스톨과 리볼버 모두 작동 방식엔 싱글액션과 더블액션이 있습니다.
뭐 최근엔 소총과 같은 방식의 타입의 공이를 사용하는 권총도 많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권총엔 격철(해머)이 뒤에 달려 있습니다.
약실에 탄이 있을 경우에 젖혀진 해머가 공이(앞뒤로 움직이는 바늘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를 때리면 공이가 앞으로 튀어나가며
탄환의 뇌관을 때려 폭발시키면 그 폭발로 다시 화약이 점화되서 여기서 발생하는 폭발가스가 탄환을 밀어내는....이런 구조죠.
이 젖혀진 격철을 풀어주는 역활을 하는 것이 방아쇠입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당겨진 활시위를 놓아주는 것인 셈이죠.
싱글액션이란 이 방아쇠가 단순히 격철을 풀어주는 장치인 것, 그리고 더블액션은 방아쇠를 당김에 따라 격철도 뒤로 젖혀지다가
일정한 정도를 넘어가면 격철이 풀어지면서 공이를 때립니다. 싱글액션처럼 미리 젖히고 사용도 가능.
더블액션이 물론 유리하겠지만 방아쇠를 더블액션으로 하면 해머를 젖히기 위한 힘까지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더블액션으로
작동하는 경우엔 명중률에 영향이 있다던가.
그 외에도 해머를 젖힌 후, 반 정도만 되돌려 놓으면 훨씬 작은 방아쇠 압력으로 총을 쏠 수 있게 하는 패스트액션이란 방식도
있고, 국내에서 개발한 권총에도 도입되었다는데... 아쉽게도 장전 여부를 알기 어려워서 오발사고가 나기 쉬운 단점이 있다는군요.
하여간 여기서 리볼버와 피스톨간의 싱글액션 시 작동 차이가 발생합니다.
리볼버의 싱글액션은 말 그대로 한발 한발 쏠 때마다(연사를 하건 한발 쏘고 도망가건) 해머를 일일이 젖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스톨은 한발 쏘면 슬라이드가 뒤로 제껴지면서 탄환을 배출하고 돌아가는데, 이때 제쳐진 슬라이드가 해머를 뒤로 밀어
놓고 갑니다. 그래서 첫발을 쏠 때만 해머를 젖히면 되죠.(그래서 자동권총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후엔 계속 자동으로
해머가 젖혀지니 방아쇠만 당기면 OK. 물론 오발을 막기 위해 다시 해머를 원위치 시켜놓았다면 다시 나중에 쏠 때는 젖혀야 하지요.
그래서 리볼버와 피스톨의 싱글액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기관권총은....뭐랄까....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게 생각을 하지요.
1. 약실에 장전하고 해머를 뒤로 젖혀(기관권총도 일단은 싱글액션이 있습니다.;) 놓는다.
2. 방아쇠를 당겨 해머를 푼다.
3. 탄환이 발사되고 슬라이드가 뒤로 움직이며 탄피가 배출되고 해머가 뒤로 제껴진다(여기까진 보통 피스톨과 동일)
4. 슬라이드가 원위치 된 후에도 방아쇠가 당겨져 있다면 해머가 다시 풀리며 공이를 때린다.
5. 1~5까지 반복
뭐, 대충 이런 느낌의 작동으로 움직입니다.(물론 실제로는 3점사, 단발, 연발, 안전 등의 모드가 있기 때문에 저렇게 단순하진
않습니다만) 일부 가스건들도 부품마모가 일어나서 작동타이밍이 어긋나거나 하면 기관권총이 되어버리는 일이 가끔 생기죠;
예전에 아는 사람이 쓰던 소설에 콜트 社의 골드컵이란 권총을 등장시키며 인피니티 피스톨(기관권총)이란 설정을 쓰길래 열라
까준 기억이 있는데... 골드컵이란 모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콜트의 골드컵은 인피니티 피스톨이 아닌 매치 경기용 모델이죠;
하지만 콜트도 기관권총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굉장히 오래된 물건이죠.
바로 풀오토 콜트라는 물건이 있었는데... 정식제품은 아니라더군요. 아마도 권총의 시어라던가 일부부품을 개조해서 위에서의
시퀀스처럼 작동하도록 개조한 것 같습니다. 45구경의 자동연사니 뭐 명중률도 기대하긴 힘들 거 같고.
콜트는 7발 밖에 안들어가기 때문에 롱탄창도 만들었다는데... 탄창 두개를 잘라서 용접해서 만들었다더군요.
얼마전 개봉했던 영화 <퍼블릭 에너미>의 존 딜린저 일당도 개머리판을 잘라낸 톰슨기관총과 함께 이 풀오토 콜트를 썼다고 합니다.
민수용 모델은 아예 이 연사개조가 안되게 되어 있는데, 이걸 연사가 가능하게 바꿔주는 컨버젼 킷도 있었다고 하네요.
고교시절부터의 개인적인 테마 중 하나인데, 흔히 사람들이 인간의 특성으로 꼽는 이성이라는 놈이 그렇게 특별한 건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이성이 특별히 본능보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본능을 반드시 꾹꾹 눌러둬야 하는 필요성도 본능의 대칭점에 이성을 놓아야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본능이란거 사실 무지하게 냉철하고 합리적인 물건이다.(여자보면 바지 벗고 거시기만 덜렁 거리는 것만 본능이 아니고) 고작해야 수십년간 축적하는 개체의 정보와 달리, 세대를 거듭하면서 축적되는 막대한 정보량을 근거로 가장 최적화된 프로세스다. 거기다 꼭 따로 안 가르쳐도 안정적으로 보존된다는 특성도 있다. 고양이랑 같이 기른다고 개가 고양이랑 똑같이 행동하진 않으니까.
나나니벌은 다른 곤충의 몸에 기생하는 유충을 낳는데, 이 과정에서 숙주를 마취시키고 땅굴을 파서 숙주를 넣고 그 위에 알을 접착시킨 후, 땅에 묻는다. 그런데 나나니벌이 땅굴을 메우기 전에 눈 앞에서 알을 들어내어도 나나니벌은 그대로 굴을 메운다.
이것만 보면 본능이란 맹목적이기만 한 지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나니벌의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의 한계를 생각해 볼 때, 그리고 나나니벌의 알이 공격을 당할 전체적인 확률을 생각해 볼 때, 본능이 하던 일을 마치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나나니벌에게 [만약에 땅굴을 메꾸기 직전, 알을 강탈당할 경우를 상정한 대처 능력]을 가지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을까? 모든 생물에겐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인간은 3차원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새나 물고기의 본능적인 3차원 지각과 동일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나나니벌의 경우는 그것이 다양한 상황에 관련된 사고능력의 결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충-알이 공격 당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성장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대대적으로 실험되었고, 그 과정에서 도태하거나 다른 선택을 한 종과 달리 나나니벌의 유전자에 남은 선택은 먹이와 함께 알을 파묻는 것이었고 그것이 나나니벌의 사고능력에서 가질 수 있는 한계일 것이며 이 복잡한 정보를 그들의 유전자는 본능의 형태로 저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본능은 생물이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모든 정보이다. 생물학적으로 완성된 몸을 가지고 생물로서의 정보인 본능을 가지지 못한 어떤 동물을 생각해보자. 숨은 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자율신경이니 부교감신경이니 하는 것도 결국은 뇌가 아예 관여 안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일상적인 지각과 사고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고와 지각과 전혀 관련 없는 다른 기능일 것인가? 그렇다면 심장의 맥동이나 우리의 호흡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일정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분명 근육이 많은 활동을 하면 부족한 영양과 산소의 공급을 위해 숨은 가빠지고 심장은 열심히 뛴다. 소뇌니, 해마니 하는 부분들이 관장하는 본능 역시 지각과 사고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보다 복잡해지는 다른 개체와의 관계등에 대한 본능 역시 그러하다. 성적 욕구에 대한 본능이나 식욕에 대한 본능 등. 이것들이 천하다는 대우를 받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것은 우리가 생물적으로 획득한 무리동물로서의 본능이다. 무리동물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정보 보존과 무리의 보존 두가지의 상황에 대해 선택적인 행동을 하고, 두가지에 동시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의 보존에 우선하도록 되어있다.(이기적 유전자라던가) 그런데 이것이 무리 동물로서가 아닌 사회 동물(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예라고 볼 수 있겠다)의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사회 동물이 획득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방법(본능이 아닌 이성의 규율이랄까)"이 무리 동물이 획득한 "무리를 유지시키며 살아가기 위한 본능"과 충돌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이 선택한 "사회를 유지 시키는 방법"을 [본능을 우선 획득하게 마련인 생물인 다른 개체]에게 납득시키려면 그것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교육해야할 필요가 있다. 마치 수간이 미치는 위생적 악영향을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 염소를 악마로 가르친 것과 같다.
원죄, 7의 대죄니 하는 것들을 보면 대부분이 본능적 욕구와 결합된다. (선악과의 죄도 이 본능과 이성의 싸움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본능을 죄악시 한게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깝다는게 재미있다.) 마치 인간이 [신의 선함]을 증명하기 위해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고난]을 달게 받아들이듯이 본능도 이성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격하되고 죄악시 된 것이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인간의 언어 사고에 대한 생각도 이것과 같이 생각 해 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언어로 생각을 한다고들 말하는데 나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언어는 정리-표현의 도구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기호화-그리고 음성화하는 도구이다. 여기에 시각적 기호화를 덧붙이면 문자도 포함된다. 표현을 위한 정리를 돕기 때문에 언어는 스쳐 지나가는 언어화 되지 않은 사고보다 명확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어의 특징은 모호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꽃의 모양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다만 우리는 끊임없이 교류하는 생물이기 때문에 사고를 언어화하는 버릇이 들게되고 따라서 사고의 언어로의 전환이 무시무시하게 빠른 것이지(마치 영어를 오래 사용한 한국인이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것보다 그냥 영어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사고 자체가 언어의 형태를 띄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음성언어에 대한 지식과 지각이 없는 완전한 농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론 문자가 우리의 음성언어를 기반으로한 기호화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는 문자로 생각하는 것도 힘들것이다. 아예 문자도, 언어도 모르는 농아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수화를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적어도 행위나 물체에 대한 기호화가 가능하다면) 이들의 경우 우리와 같은 사고를 할 수 있을까? 동일한 언어적 사고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커뮤니케이션-표현을 위한 프로토콜이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언어화되지 않은 사고가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어화되지 않은 사고가 그렇지 않은 사고보다 모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때때로 모호해 보이는 이유는 언어화 하기엔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의 특징과 같다. 설령 그것이 가능한 세필과 특수한 물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물의 세포나 털, 피부의 잔주름을 일일이 그리는 화가는 없다. 그럴 바에야 직접 일일히 묘사하는 그림이 아닌 한번에 그냥 다 담아버리는 초고화질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낫다. 즉 모호화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사물을 표현하는 그림만이 아닌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국어와 수학은 다르니까 언어와 수학도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 학문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국어는 자신의 주장이나 기분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한 논리적인 과정(아바밥바바로 내가 느끼는 달콤함을 전하긴 힘들지 않겠는가)이고 수학 역시 계산을 정리하고 전달하기 위한 논리적 과정이다. 암산을 빠르게 하다보면 머릿속으로 수식을 짜고하지 않아도 불쑥 답이 튀어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언어-기호화를 할 시간도 없이 뇌가 먼저 답을 제출한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오감이라고 하는 다섯가지 감각도 수많은 복잡한 정보들을 받아들인다. 손으로 더듬어서 느끼는 것만히 촉감이 아니다. 중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무거운 액체를 촉감을 느끼는 주머니 안에 넣어두어보자. 중력과 관성, 운동 등에 의해 변화하는 무게분포와 압력에 의해 주머니는 중력의 방향, 운동상황 등을 계산하는 능력을 가질 것이다. 우리의 중력감지 센서인 세반고리관의 구조이며 정밀 기계에 들어가는 운동센서도 같은 구조다. 이것도 촉감이다. 원시적인 감각이지만 촉감은 모든 오감의 근본이다. 간단히 촉감이라고 하지만 촉감은 압력에 대한 감각과 온도에 대한 감각이다. 온도를 느끼는 부분이 발달하고 이것이 가시광선에 극도로 민감해지면 시각이 된다(일부 조개의 원시적인 눈은 빛의 유무 정도만을 감지한다. 뜨거운 조명을 우리가 피부로 느껴서 그 조명의 방향을 감지하는 정도의 감각이다). 고막의 울림-즉 압력을 감지하는 촉감은 뇌가 음성신호로 해독하면서 청각이 된다. 특정한 분자와 수용체세포의 결합(극소 단위의 압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을 공기중으로 느끼면 후각, 침에 녹아 나온 것을 혀로 느끼면 미각이 된다.
결국은 극도로 첨예화된 압력과 온도의 정보를 뇌에서는 분류하고 해석하여 오감의 정보로 만든다.(물론 전문적으로 받아들이는 기관과 신경이 있으니 가능한 것이지만) 이 방대한 정보의 처리와 그에 대한 대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하드웨어-신체-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OS-본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어봐야 하드웨어를 구동시킬 OS가 없으면 말짱 꽝 아닌가. 본능이 지금 우리의 세계관-인간이라고 구분 되는 것들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규율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본능은 우매하고 저열한 것이라고 평가하다니. 반대로 언어나 그것들로 쌓아올린 문화와 문명의 MEME이 없다고 해서 동물적인 인류가 지금의 문명화된 인류보다 멍청하거나 천박한 것은 아니다.
미분적분 모르고 음식 손으로 집어먹는다고 해봤자. 결국은 맨손으로의 사냥이냐 뼈다귀를 들고 하는 사냥이냐 정도의 차이다. 도구가 잘나진 거지 인간이 잘나진 게 아니라니까.(뭐, 하도 오래 그 도구에 길들여 져서 몸조차도 많이 바뀌었으니-슴가가 빵빵해지는 등 신체 구조상 변화가 꽤 있다.- 이젠 이성이라는 도구 없으면 못 살 것 같긴 하다)
P.S 여기와서 그런 태클 걸 사람은 없겠지만 본능도 좋은 거라고해서 별거 아닌 이성 버리고 본능적으로 살자! 라는건 아님 인간으로서의 이성이란건 인間(사이 간자를 좀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거 같은데 이건 무리의 뜻이 아닌 사회라는 뜻임. 즉 사람이란 개체를 인간으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사회에 소속되고 그 집단의 프로토콜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 인간이라는 種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거임. 사람하고 인간은 서로 다른 종이니까. 그저 우리는 하드웨어와 OS와 기타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의 총합이니까 그중에 하나 업신여기거나 하나만 우대하진 말자는 거지. 총합 이라는 점에서 뭐 하나만 달라도 아주 다른게 되어버리니까 말야.
상당히 오래전에 주워들었던 일본 괴담입니다.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으니 주인공 이름은 대충(...어이!?) 신이치로 해두지요.(...야?!) 친구는 대충 준이라고 해두지요.(..........)
신이치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단신의 힘으로만 신이치를 뒷바라지 해 오시다가 결국 병을 얻고, 다시 몸이 나으면 일을 하여 신이치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다가 쓰러지시고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이치가 고2가 되던 해, 결국 어머니는 두번다시 일어나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으시며, 신이치에게 품속에서 부적주머니를 꺼내어 건네주셨습니다.
"신이치, 세상이 살아가기 힘들 때 열어보렴."
신이치는 혼자 힘으로 그리고 주변의 도움으로 장성하여 대학교에 들어가 밝은 모습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어른으로서 살아가던 어느 날.
"그러고보니 그 부적주머니 안에 대체 뭐가 들은 거냐?"
신이치의 오랜 친구인 준이었습니다. 신이치의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겨주신 것이라는 것도 알고있는 준이었지만, 너무나 궁금했고, 또 신이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도 꽤 시간이 지났으며 신이치도 훌륭하게 컷으니 열어봐도 어머님의 뜻을 크게 거스르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될수 있으면 부적을 열고 싶지 않았던 신이치였지만, 준의 꼬드김도 있고 자신도 그것이 궁금했기에 결국 부적을 열었습니다.
부적의 안에는 떨리는 글씨로
[신이치, 죽으렴]
이라고 써있었습니다.
================================================================================= 무섭다기보단 찜찜한 괴담입니다. 저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는... 차라리 귀신이 나오는게 낫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