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은 에바 본편 혹은 저와 별 관계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에반게리온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글쎄요. 중학교에 올라가기 조금 전 쯤인가? 당시의 모 게임잡지의
구석에서 베이클라이트 용액에 잠겨 봉인되어가는 에바 영호기의 섬네일과 함께 짧은 소개가 붙어있었습니다.
당시는 "뭐야, 이 메카는 왜 하반신이 없어?"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쯤인가.... 국내 모 격주 만화잡지에 에반게리온 코믹스가 연재되고- 마침 또 국내에 대원CI의
에반게리온 더빙판 수입이 되었죠. 그리고 저는 에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슬슬 제 이야기를 끼워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어린시절(유치원 시절에 이미) 굉장히 소극적인 아이였습니다. 남들과 두어마디 하는 것보다 책을 읽는게
좋았고, 심지어는 초등학교 저학년때도 선생님을 보고 수업을 받고 필기를 하느니 그 시간에 책상 밑에 책을 넣고
(장르는 상관 없었습니다. 뭐라도 말보다는 재미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을 보고는 했었지요. 뭐, 어차피 초등학교
(물론 제 때는 국민학교였습니다만)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수업을 따라가는 것 자체도 별 문제 없었고, 그런식이다 보니
친구들이랑도 그다지 많이 사귀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나이 대만 해도 아이들이 성격이나 외모 같은 걸로 많이
차별하진 않으니까 아무래도 큰 문제는 없었죠.
문제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제 성격을 이해해줄 친구도 없죠-, 제가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갈 성격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미숙아로 태어난
주제에 생후 1주일만에 병원 최고의 우량이가 된 저라(....) 덩치는 좋으니 주변에선 시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시비는 계속 걸리는데 성격은 내성적이라 좋을대로 해라-라면서 널부러져있었으니 당연히 왕따가 되고....
아무래도 좋아-라는 스탠스로 있었지만, 사람이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을리가 없겠죠;;;
그 때. 에반게리온을 만났습니다.
대개 많은 만화의 주인공이 좋지 않은 가정사정(사라진 아버지나 죽은 어머니 등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굉장히
쾌활하고 듬직한 성격인 반면, 신지는 굉장히 나이브하죠. 아니, 솔직히 겨우 14세라구요? 당연한 거죠. 또 많은 작품의
주인공들은 대개 강력한 힘을 얻게 되고 누구나가 의지하는 남자(페르소나로서의 힘이나 무기를 얻고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가 되지만, 에바는 조종도 어렵고, 고통은 그대로 전해지지, 케이블 지원 없이는 얼마 버티지도 못해, 심지어는
메커니즘조차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은 믿음직 스럽지 못한 갑옷입니다. 애시당초, 신지의 성격상 가까워지고 싶지만
다가서기 어려운 아버지 때문에 무서운걸 겨우 억누르고 타기 시작한 메카닉인데다 첫 출전에선 고통만 맛보았죠.
거기다 기분이 들뜨고 누군가와 사이가 좋아졌다고 느낄 때마다 죽고, 배신당하고, 미움 받고..... 계속해서
상처입어가는 연속입니다.
알고 보면 불쌍한 애라지만, 나도 알고보면 불쌍하다!(...)
에반게리온의 강점은 물론 오타쿠들이 파고 들 설정 떡밥을 계속 던진 점도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휴우가를 위시한
남자 오퍼레이터는 무시합니다-들로 가득한 점도 있고, 하지만 정말 대단했던 부분은 신지의 나이브한 내면을 수십화에
걸쳐 계속해서 롱테이크로 잡아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약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도 그 때마다 세상에 꺾이고,
사람에게 상처입는 신지를 보고 있으면 저 외에도 내성적이고 나약한 오타쿠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신지는 나-라고, 다른 만화 주인공들이 페르소나로 우리가 자신을 캐릭터에 투영하며 자위를 얻는 페르소나였다면,
신지는 나약한 내면을 그대로 우리에게 투영하는 일종의 메타자아에 가까운 캐릭터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TV판 엔딩은 그런 점에서 제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물론, 신지는 크게 성장하지도 않았고, 크게 변하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힘내라-!라는 말과 동시에 분명 한 마디를 더 해 줍니다. "축하해" 작은 깨달음을
얻은 나-신지를. 그래서 조금은 변한 우리를. 그렇게 약간이나마 새로 태어난 모두를. 그리고 그 말은 사실 이런 뜻일
겁니다. "괜찮아. 너는. 우리가 알고 있어." 조금만 변한 걸로도 충분한 우리는 이미 그 외의 수 많은 부분을 긍정받는
것이지요. 아침이 아침이게 하는 힘. 희망이 희망으로 믿어지게 하는 힘.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힘.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힘. 나아가, 우주가 존재하게 만드는 힘.
그렇게 저는 너무나 힘들었던 그 시절-학교에선 왕따, 집에서는 아버지의 두번의 뇌졸중, 심지어 저는 교통사고로
두달 가까이 입원해 있었고, 아버지는 뇌졸중을 앓으시기 직전 저를 간호하시다가 피로의 누적으로 이까지
빠지셨습니다-을 에바를 만나며 견뎌냈습니다. 이겼다-? 아뇨.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저는 그저 그 모든 일들을
긍정했습니다. 난 왕따 당햇고, 집도 어렵지만, 내 다리도 신경이 눌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래서 그게 어쨋단 말이야?]
나는 나-. 나에 대한 全긍정. 나약한 부분과 더러운 부분을 직시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은 허세를 부리게 됩니다.
그래서는 언젠가 지치게 될 뿐이지요. 제가 아- 이건 정말 대단해-라고 느낀 라이트 노벨이 몇 작품 있는데,
그중 좋아하는 작품이 아키야마 미즈히토의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과 하시모토 츠무구의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입니다. 이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보이 밋 걸 스토리의 전형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이 별 볼일 없는 변변찮은 녀석 들이라는 것.
네, 중~고생. 한창 자기가 잘난 줄 알고, 허세부리는(중2병이니 하지만 그게 당연한 거라구요?) 나이대의 소년들.
그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세상과, 현실과 만나면서 부서지죠. 변명하고, 도망치고, 다시 허세를 부리고, 어설픈 노력을
하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할 리 없습니다. 이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정말 별거 아닌 두가지 일 밖에는
없습니다. 덮어버리고, 없던 일로 하고, 포기해서는 잊어버린 척 하고 살거나, 그도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력함과 더러움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긍정한 채 잊지 않는 것. 사실 많은 경우 사람의 정신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전자를 택하게 됩니다. 쉽고, 효율적이니까요. 본능은 그렇게 잔인할 정도로 냉정합니다.
하지만, 그걸 거부하고 현실을 긍정하는 순간, 사람은 한 걸음 내딛게 되고, 별 볼일 없는-그래도 중요한 성장을 하게 되죠.
물론, 그런 자기 대입이 없어도 나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털털하면서도 예쁘고 멋진 누님 미사토,
츤데레에 활발한 아이돌 타입 아스카, 조용하지만 상냥한 은은한 성격의-쿨데레라던가요? 레이, 의사 가운 페치에게
잘 먹힐 리츠코 등등...충분히 멋진 캐릭터들로 채워져 있고, 독특하고도 파고들 재미가 있는 설정도 있으니까요.
에바의 디자인도 보다보면 정이 가고 말입니다;
신 극장판은 스토리의 대부분을 서에서 때려부은 탓에 그 동안 신지가 느끼는 심리적 갈등은 좀 표현이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에바의 테이스트는 잘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활발은 하지만 츤데레는 아닌 짐승녀 마리-도 나오고 말이죠;
제 한없이 안으로만 침잠하던 그 시절은 그렇게 구원 받았습니다. 사실, 뭐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실없는 농담 한마디에 사람이 반하는 것 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다른 분들의 에바에 대한 감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덕질을 시작했습니다.(.....뭔가 결론이 이상한데;;)
만약 이 리뷰를 보시게 된다면- 이 기회에 보셧던 분들은 한번 더 보시거나 그 때의 추억들을 회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고, 아직 보시지 않으신 분들은 신 극장판이라도 한 번 보심도 괜찮지 않을까요.
신지에 대한 감정이입은 좀 더 어려울지 몰라도 에바엔 신지 한 명만 나오는게 아니니까요!(불끈~)
전에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파를 두번이나 보고는 당시에 받았던 질문인 "왜 에바를 좋아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해보고 싶어져서 한번 글을 써보았습니다.
물론 대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사랑을 하는데 이유따윈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