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저희 오빠.. 그러니까 피의 잉크 이형석군(영원히 늙지 않을테니 군이라 칭하는것을 용서하세요)의 삶이
물들어 있는 블로그입니다.
저는 블로그도 포스팅도 할 줄 몰라 관리를 못할지도 모르지만..... 가끔 찾아주실거라 믿고갑니다^^
저희 오빠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제 일주일정도 남았네요 오빠 49제...
다녀와서 사진한장 정도...글 한줄정도... 또 남기도록 해보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양이라는 놈들은 언제나 건방져서 사람을 무시 한다-라는 것이 세간의 보편적 인식인 듯하지만, 실은 그건 사실이 아니다.
녀석들은 그저 자존심과 자긍심이 강할 뿐이다. 자신이 정한 방향이 아니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긍심이 강하며, 한번 정한 일은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차마 취소할 수 없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것이다. 그래서 강아지와는 달리 훈련이 어려운 게다.
훈련된 고양이 말야? 그건 어디까지나 "훈련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신 고양이님"이신 경우다.
그래서 나도 지금 이 녀석에 대해선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 녀석 덥지도 않은 거냐."
"냐아-"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외출 버릇을 가진 고양이를 뽑는다면 당당히 상위권에 오를 것이 분명한 내 동거묘(라는 호칭이 적합이나 하겠냐. 아마도 난 이 녀석에게 부하1 정도라고)인 미아는 오늘도 여지없이 내 머리 위에 들러붙어 있다.
그것도 발톱을 세워 얼굴과 머리 구석구석에 사지를 걸고서 여유 있게 하품까지 하고 있다. 이 자식 진짜!
"여름에도 이래야만 하는 거냐. 정말이지…."
투덜대어 봐야 소용없다. 고양이들은 자신의 판단으로서 세계를 재판하는 짐승인 것이다. 녀석이 나를 녀석의 탑승물의 하나로 판결내린 이상은 내가 녀석을 밖에 데려다 줘야한다. 아니, 대체 내가 일 나가고 나서는 외출을 어떻게 하는 거냐, 너.
분명, 밤에는 얇은 가디건이나 하다못해 와이셔츠라도 한 장 더 걸쳐야 나올 만한 계절이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이제 모자나 선글라스 없이는 낮에 나가기 힘든 계절이 되었다. 작년 가을에 녀석을 데려왔는데, 정말이지 시간은 쏜살같이 내달렸다. 고양이는 빨리 크는 구나…. 처음 데려 왔을 때는 상의 주머니에도 들어가던 녀석이 이젠 나를 마징가제트 쯤으로 여기고 있으니.
"너 말야."
"…."
"…내가 고양이랑 대화를 하려고 하다니. 미쳤나…."
녀석이 들러붙어 있어 머리를 내젖지는 못하고 대신 입을 닫았다. 손을 뻗어 낡은 운동화를 신는다. 오랫동안 길이 든 운동화는 가볍게 발에 감기면서 당연히 거기 있어야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미아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머리가 흔들리면 녀석이 머리와 얼굴 가죽을 이리저리 잡아당기기 때문에 머리를 기울이지 않고 손쉽게 신을 수 있는 신을 찾게 되었다. 미아가 불편하지 않도록 천천히 일어나 도어노브에 손을 댄다. 피부보다 15도 정도 차가운 금속의 감각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밖은 예상대로 눈이 부셨다. 주머니에 넣어둔 안경집에서 선글라스를 꺼내어 걸치고는 머리 위에서 늘어진 미아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 짧은 사이에 잠이 들었었는지 늘어졌던 미아의 몸에 약간의 긴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두피로.
"냐아-"
당연한 듯이 녀석이 나를 리드한다. 녀석이 당기는 방향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처음엔 고양이가 가는 길로 이끌려고 해서 계속 담장으로 날 밀어붙이거나 할 때도 있었는데, 녀석도 이젠 나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그래도 이제는 사람이 가는 길로만 골라서 걷게 한다.
나의 한 걸음 만큼, 미아의 인도에 따라, 풍경이- 세계가 조금씩 변해간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고스란히 받아 부슬 부슬 부서지기 시작하는 낡은 콘크리트 블록 담을 따라- 건설업체의 부도로 일 년 정도 공사가 멈춘 건물을 지나- 그리고 동네 뒷산으로 길을 오른다. 많은 경우 그렇듯이 지역 공원으로 개발된 뒷산이다. 개발이라고 해도 띄엄띄엄 벤치와 계단을 설치하는 정도지만.
공원을 걷고 있자니 가끔 마주치는 동네사람들이 인사를 해온다. 머리를 가리키면서 난처하게 웃으며 입으로만 인사를 한다. 주민들도 미아의 버릇을 아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다들 웃으며 이해를 해준다. 머리 위에 따듯한 털 뭉치를 얹고 돌아다니자니 땀이 좀 흐른다. 바위가 튀어나온 길을 돌아 그늘 쪽 비탈에 있는 약수터 옆을 지나치게 되어서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오른 손바닥을 둥글게 오므려 물을 받아 어깨 근처로 가져가자 미아가 어깨로 내려와 물을 마셨다. 이젠 서로 너무나 익숙해져있다. 미아와 만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먀-"
미아가 내 관자놀이 근처를 핥더니 다시 머리로 기어 올라갔다. 녀석 나름의 고맙다는 표시일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조금 길을 걷자 이제 넓고 정비가 잘 된 포석이 깔린 내리막길이 나온다. 일반적인 공원하면 생각나는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구석엔 게이트볼과 테니스장이 있고, 여기저기 잔디밭과 벤치들이 있는.
"슬슬 더워지네. 그렇지 미아?"
광장에서 약간 떨어진 잔디밭의 개다래나무 그늘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다시 안경집에 집어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곳은 동네 공터와 더불어 미아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개다래나무 아래서 무아지경으로 뒹구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자존심 강하게 절대 취해서 돌아가지는 않는 녀석인지라 단순히 개다래나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여기까지 오는 길 전체를 좋아하는 것 아닐까? 외출할 때면 고양이는 주인을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녀석은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머리에서 내리고서도 열심히 내게 몸을 비벼 자신의 냄새를 묻혀놓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여운 녀석이다.
미아의 목에 연락처 태그가 달린 목걸이를 확인하자 미아는 곧 개다래나무 그늘 아래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나도 곁에 누워 눈을 감았다. 슬슬 더운 날씨에 걸어 다니다가 그늘에 드러눕자 아주 옅은 피로감에 잠이 몰려왔다.
-난 갈게. 가게 정리하고 들어가.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날 그것이 마지막 우리의 인사였다. 인사라고 하기에도 모자란 그 무엇. 나는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눈이 녹듯 그녀의 뒷모습은 사라지고, 나는 홀로 공허를 느낀다. 눈가가 따듯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까끌한 것에 쓰다듬어진다.
"일어나." 그렇게 부르는 소리를 들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뜨자 미아가 내 얼굴을 핥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진 하늘 조각이 날카롭게 눈을 찔러 왔다. 해가 움직인 정도로 봐서는 한 두시간 정도 잠든 걸까?
"네가 깨웠니?"
미아의 짧은 털이 난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웃으며 내 앞머리를 쓸어 올리려는 찰나- 바지에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뺨을 타고 흐른 물방울. 아마도 나는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간만에 그녀의 꿈을 꾸었던 탓일까. 어떻게 돌아온 건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은 채, 저녁 준비를 하면서도 영 기운이 나질 않는다. 창밖은 어느새 하늘이 노랗게 변해 있었지만 태양은 건물의 숲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지만 손은 익숙하게 움직여 씻은 애호박을 깍둑썰기하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인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티비 소리. 커튼을 치지 않은 창들 너머로 보이는 저녁의 거리. 현기증이 난다. 날씨는 이제 덥다고도 할 수 있는 계절이지만 전신의 모공이 오한이 들 때처럼 따끔거린다. 냉장고에서 자잘한 반찬을 꺼내고 식사 준비를 한 후 미아에겐 캔을 하나 따주었다. 뜯어낸 사료캔의 뚜껑에 살짝 손이 베여 손가락 끝에서 피가 방울 져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며 묵묵히 밥을 입 속에 밀어 넣는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수저를 타고 피가 떨어진 밥에서는 짠맛과 비린내가 났다.
-네가 받아주지 않아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어. 그저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해서…
서툴기 짝이 없던 고백이었지만, 반쯤 포기한 채 내던진 고백이었지만, 그녀는 나를 받아주었다. 나를 세상이라는 거리에서 주워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줄 장미꽃을 샀다. 아름다운 동시에 어떤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장미. 세상이라는 사막에서 나는 장미꽃을 만났다. 굴러 넘어진 세상에서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신이란 것이 있다면, 이 모습 이외에 있을 수 있을까?
눈을 뜨자 미약한 푸른빛이 방안에 낮게 깔려 있었다. 머리맡에는 반쯤 남은 잭 다니엘 한 병과 쓰러진 숏글래스가 보였다. 술을 마시다 잠들었던 걸까. 핸드폰을 확인해보자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알콜 비린내가 나는 한숨을 내쉬자 구석에서 무엇인가 내게 다가왔다. 어딘가 시무룩해 보이는 미아였다. 달빛 아래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의 표정을 한 고양이가 추스르지 못한 내 다리에 몸을 비벼온다. 부은 것 같은 목을 움직여 미아를 불렀다.
"….미아."
목소리를 들은 미아는 조금 기운이 났는지 고개를 들고는 천천히 다가와 넓적다리 위에 올라 앉아 넙죽 엎드렸다. 기운이 없는 팔을 들어 웃으려 노력하며 녀석의 부드러운 털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방안에 들리는 것은 나와 고양이의 숨소리,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는 녀석의 털을 쓰다듬는 소리 뿐.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조금 마음이 진정되려던 찰나, 나는 순간 어깨와 머리에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미아가 갑자기 머리 위로 뛰어 오른 것이다. 잠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나는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어찌 된 일일까? 한 밤 중에 일어나는 일도 별로 없지만, 미아가 밤중에 나와 함께 나가려고 하는 일은 지금껏 없었는데?
"미아. 지금은 나가고 싶지 않아."
아까보다는 말을 내뱉기 쉬워진 목을 울리며 미아를 잡아 내리려 했다. 하지만 미아는 또 다시 내게 예의 필살기인 여기저기 발톱 걸고 버티기를 시전 했다.
"미아. 지금은 그만 둬."
"냐아."
미아가 약간 큰 소리를 내며 얼굴과 두피 여기저기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가자고 자신이 조르는데도 안 움직이면 초조해진 미아가 자주하는 행동이다.
"미아. 그만 좀."
"냐아아."
미아는 내 말에는 반응도 없이 점점 격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고양이!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고!
"미아! 좀 그만…!"
"냐앙!"
미아가 귀 근처에서 전에 없이 큰소리를 질렀다. 귀 근처에서 소리 지른 탓도 있겠지만, 미아는 거의 소리를 지르지 않기에 놀라서 잠시 침묵했다. 아무래도 어떻게 해서라도 꼭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순간 짜증냈던 것을 반성한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 함부로 화를 내서야 되겠나.
"알았어. 알았어."
머리 위로 손을 뻗어 고양이를 다독였다. 피가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눌러대던 미아의 발톱들이 다시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술을 마시다 잠이 들어서 그런지 옷도 입은 채였고,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가며 머리를 매만지려다가 피식 웃었다. 좀 떴으면 어때. 미아가 누르고 있는걸. 새벽 3시에 누가 볼 것도 아니고.
편한 외출용 운동화를 어둠속에서도 능숙히 찾아 신고 문손잡이를 돌리자 들어오는 옅은 빛에 손가락에 아까 다친 상처가 보였다. 피는 멎었지만 나갔다 와서는 반창고 정도는 붙여둬야겠다. 밤의 거리도 미아는 날 능숙하게 운전한다. 전에 무슨 게임이었더라- 거대한 신상 같은 것의 머리에 올라타서는 두들겨서 조종하는 비디오 게임이 있었는데, 숫제 내가 그 꼴이다. 어두운 밤의 거리를 마치 부유하는 듯 한 감각. 심해어의 불빛을 연상시키는 가로등 사이를 어떤 밀도와 질량을 가진 어두운 물결에 떠밀리는 것 같다. 어둡다고는 하지만 가로등과 달빛에 의지해서 걷는데다가 어차피 내가 사는 동네라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 폐가라는 소문도 있었던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낡은 집을 지나 최근 상수도 문제로 다시 공사하느라 파헤친 길목을 지나간다. 밤을 표류하는 나뭇잎과 그 위에 올라탄 개미처럼 흐르고 흐른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은-
"….공터잖아?"
미아가 종종 찾는 동네 공터다. 왜인지 몰라도 오랜 시간동안 그냥 방치만 되어있는. 게다가 그런 곳 치고는 동네 불량학생도 모이지 않고, 쓰레기도 거의 투기되지 않는 곳이다. 그때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 같으면 훌쩍 뛰어내려 공터 구석으로 달려가 버렸을 미아가 아직도 머리 위에서 날 잡아당기는 것이다. 들어가자는 건가? 있으나 마나한 낮은 철책을 훌쩍 뛰어넘어 공터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본디 집들 사이에 끼어 있어 가로등도 무엇도 없는 공터. 하지만 반대로 가릴 것도 없기에 미약하나마 빛은 충만하다.
듬성듬성 난 잡초들, 구석에 조용히 기대어진 채 이곳의 일부가 되어버린 목재들. 그리고 역시 당연한 것 같은 구석구석의 어둠들.
"왔나?"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움찔했다. 머리 위의 미아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홱하고 돌려 본 곳에는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아무도 없었다. 무서워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는데 정말 귀신이란 게 있기는 있는 건가?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둔한 건가- 이쪽이라오. 이쪽."
이번엔 왼쪽에서 들렸다. 그러나 역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머리가 가벼워졌다. 미아가 뛰어내린 것이다. 미아는 사뿐히 땅에 착지해서는 내 발 옆에 조용히 앉았다. 이집트의 고양이상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얌전히 두발을 앞에 모은 모습이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뭐? 방금 그건?
"그러니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말 해…….말 했어?"
내가 잠이 덜 깼거나 술이 덜 깬 건가? 이건 어떻게 된 일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미아가 말한 것 같은 기분과 그럴 리가 있겠냐는 인간으로서 쌓아온 수십 년의 상식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서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얼빠진 얼굴이 되어 중얼거리고 있자, 처음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의 풀숲에서 무언가 버석거리며 걸어 나왔다. 물론- 네 발로.
"모습을 딱히 감춘 건 아닌데, 아직 시야가 너무 좁으신 거 같소이다."
내 눈 앞에 나온 건 이 공터에서 몇 번 본 일이 있는 덩치 크고 관록 있어 보이는 얼룩고양이였다.
"말 하…말 하네?"
"어휘가 좀 부족하시군."
얼룩고양이는 그렇게 말하며 미아와 닮은 모양새로 차분히 앉아 나를 올려보았다. 그때 미아가 나를 올려보았다.
"주인. 그만 좀 앉지 그래. 너무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건 우리들 사이에서도 실례다."
…될 대로 되라. 그런 생각이 들어 나도 쪼그리고 앉았다. 엄마, 내가 미쳤나 봐.
"일단 소인 소개를 합지요. 이 마을의 관리인이랄지 장로 같은 역을 맡고 있소이다. 오랜 세월 홀로 힘으로 살아왔기에 이름은 없소이다. 다들 두목이나 장로 정도로 좋을 대로 부르지요."
….고양이 주제에 엄청 예의 바르다. 그럼 내 차례인가?
"에…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친 게 맞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옆의 강아지풀을 스윽 뽑아 미아를 가리켰다.
"나는 여기 옆의 미아의 주인인데… 뭐, 장신구나 옷 같은 걸 파는 가게를 하고 있는데… 이런 거 관심 있으려나?"
"직접적인 관심으…관심은 없지만. 어, 어흠! 주변의 아이들에게 들어…서 …."
…역시나… 강아지풀이 흔들리는 걸 계속 눈으로 쫓으며 두목은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진중하게 말하려는 자존심 때문에 갈등을 겪는 모양이다. 뭐야… 나도 엄청 리얼하게 미쳤네. 그래도 왠지 미안하니까 나는 의미 없이 강아지풀 흔들기를 멈췄다. 진지하게 말하려는 고양이… 음… 고양이… 하여간 고양이….를 곤란하게 하는 것도 바른 일은 아니지. 음음. 두목도 내가 더 이상 강아지풀을 흔드는 것을 멈췄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얼굴을 붉히며-물론 순전히 수사적인 표현이다- 다시 말을 골랐다.
"흠, 흠! 주변의 아이들에게 들어서 그 주인들이 관심이 많다는 정도는 알고 있소이다. 우리는 몰라도 저 자기 꼬리한테 반하는 멍청이들도 가끔 비슷한 걸 하는 것 같고 말이오."
꼬리? 아… 강아지들 말인가. 남의 말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넌 장로라면서 강아지풀 하나에 정신이 나갔잖아.
"뭐, 하여간 그런 가게를 하고 있고 그 덕에 미아에게 사료도 사주고 하지. 나이는 곧 태어나서 서른 번째 첫눈을 보게 될 거야. 뭐, 부르고 싶으면 이름은 임상혁이니까 상혁 정도로 부르면 돼."
"음, 그럼 상혁."
"응?"
두목은 내 이름을 부르며 정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우리 고양이의 세계는 인간하고 거의 유사하게 겹쳐진 세계라는 것을 말씀드려야할 것 같소. 그래서 대부분 우리가 가는 곳은 인간이, 인간이 가는 곳은 우리가 갈 수 있지만, 가끔 그럴 수 없는 곳이 있지. 예를 들면- 이 공터가 그렇다오. 여길 보면 알겠지만 인간들이 이 공터엔 유난히 관심을 적게 가지지 않소? 노골적으로 안 보이거나 거부당하는 곳이라면 오히려 눈에 띄겠지만 이런 장소들은 그렇지 않다오. 세계엔 이런 곳들이 있다오."
"아, 혹시 그래서 내가 여기 들어와서 고양이 말을 알아듣게 된 거야?"
원래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 들어왔다면 그곳의 룰을 따르게 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그런가?
"아니 그건, 그대의 문제요. 뭐 어찌되었건 조금 후에 설명 드리리다. 그리고, 아까 말한 특별한 공간은 그대가 미아를 자주 데려가는 공원의 개다래나무 밑도 마찬가지요. 반대로 거긴 인간의 영역이지. 개다래나무가 있는데 거기서 미아 외의 고양이를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소?"
그러고 보니까…. 없네. 고개를 흔들자 두목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아도 당신과 함께라면 그 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오. 그래서 미아는 상혁 당신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 당신이 쉬는 사이에 우리에게 그곳의 개다래 잎이라던가를 나눠주고는 했다오."
"그럼 난 마약상의 운전수 같은 건가."
내가 그리 말하자 두목은 마약이 뭐요? 라고 물었다. 몸에 해로운 강력한 개박하나 개다래 같은 것이라고 하자 두목은 실로 그렇다며 크게 웃었다. 호탕하게 보이는 것이 꼭 중학시절 마음에 들던 담임선생 같은 느낌이었다.
"특별한 곳의 개다래나무는 굉장히 특이한 성질의 물건이라오. 기분은 좋게 하지만 절제할 수 있고,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바로 당신의 이야기라오."
드디어 나에 관련된 이야기인가? 뭘까?
"상혁은 오늘 그곳에서 낮잠을 자지 않았소?"
"응? 그야, 거긴 드러누워 낮잠 자기 좋은 곳이라."
"특별한 곳의 개다래나무 아래, 그믐달의 날 잠을 잔 사람은 일생에 한번 고양이의 세계로 들어올 자격을 얻게 된다오."
그믐달이라니? 그 달이 거의 안 뜨는 날인가, 오늘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이 그믐달이야? 이렇게 밝은데? 아까 내가 방에서 눈을 떴을 땐 분명-"
그때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미아가 내게 말했다.
"하늘을 봐. 주인. 뭐가 있어?"
-! 미아의 말을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그대로 굳었다. 하늘엔 별과 구름을 제외한 그 어느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인공적인 빛이 없는 이곳에서 사물을 인식하는데 나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장로에게 물었다.
"말하지 않았소. 그대는 오늘 고양이의 세계에 들어올 권리를 얻은 게요. 우리와 같이 보고 들어야 들어올지 말지 결정할 수 있지 않겠소?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아서 알아서 속게 되는… 그걸 뭐라고 하더라… 비대광고?"
과대광고야-라고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데… 그런 곳이 세계에 한 둘 뿐이지도 않을 텐데 그런 곳에서 잔 사람이 그렇게 없을까?
"아니오, 그런 게 아니오. 상혁. 그대는 용도 모를 물건을 주워본 적이 있소? 그런 것은 있어도 쓸 수가 없지. 이것은 그런 것이오. 설령 그믐달에 자격을 얻은 자라도 깊이 잠들어 그믐밤이 지나가 버리면 그것을 모를게 아니오? 당신을 이 세계의 입구로 인도한 것은-."
"나야, 주인."
"…미아?"
그러니까 그믐달이 뜨는 날, 매우 특별한 장소의 개다래나무 아래서 낮잠을 잔 사람이 그날 밤 '자격'을 얻고, '안내인'의 인도를 받아야 고양이의 세계의 언저리에 도달한단 말인가? 그렇게 정리하자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앞발을 핥았다.
"거기다 우리는 일단 그대에게 신세를 지는 셈이기도 해서 말이외다. 그리고 뭐, 이젠 상혁 당신이 결정할 차례요. 고양이의 세계에 들어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거부한다면?"
"별 일은 없소. 그냥 아침에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말도 못 들을 것이고, 눈도 보통 인간의 것이 되오."
"들어간다면?"
거부해도 별 다른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지?
"조금씩 차이는 있소이다만, 대개는 보름달이 뜨기까지 한정적이나마 우리의 세계에도 들어오게 되오. 말을 나눌 수도 있고, 선택적이나마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지. 기간이 지나도록 이 세계를 나가는 걸 거부해서 인간과는 말을 하게 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소만, 당신은 그럴 사람 같지는 않구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미아를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자존심강한 고양이답지 않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미아는 어쩌면- 나와 함께 이 세계를 걷고 싶어서 날 이곳으로 인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손을 뻗어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두-장로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에 들어서도 기간적으로 한정적인 거니까 별로 손해 볼 것은 없는 것이로군?"
"뭐- 그런 거요."
"좋아, 결정했어. 난 뭘 하면 되지?"
손해 볼 것도 없는데 뭐. 그래. 이런 기회는 많지 않다. 동거묘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일생에 한번 정도는 괜찮은 추억일지도 모르잖아? 이중생활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마음을 굳혔다. 한번 까짓것 들어가 보자! 두목은 하품을 한번 하더니 꼬리로 공터의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우리 세계에 들어오겠다면 저 공터 한가운데에 서면 되오. 아니면 그냥 나가면 되고."
이후에 일어난 일은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공터 한 가운데 서고, 장로가 크게 한번 울어 젖히자 어디에서 모여들었는지 사방에서 고양이들이 한두 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몰려든 고양이들이 공터를 가득 메웠다. 길고양이로 보이는 녀석에서 집에서 기르는 것으로 생각되는 녀석들까지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사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장로가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나 싶은, 플롯이나 금관악기의 것과 닮은 소리가 퍼지자 고양이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울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지만, 이것이 고양이들의 뭔가 숭고한 의식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마치 어딘가의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 같은 느낌의 소리가 주변을 천천히 메워간다. 고양이가 내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 그 순간 아주 잠깐, 하늘의 구석에서 실처럼 가는 달이 보인듯 한 느낌이 들었다. 몸을 부드럽게 밀어 올리는 듯 한 노래가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고양이들이 부드러운 미소를 띄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자, 새로 태어난 기분이 어떻소, 승혁?"
장로의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놀란 것은 소리였다. 소리가 굉장히 선명하게 입체적으로 들렸다. 소리만 듣고도 사방을 인지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놀란 눈으로 장로를 바라보자 장로가 유쾌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진정으로 '겹쳐진 자'가 된 것이라오. 고양이처럼 들을 수 있고, 고양이처럼 볼 수 있고, 고양이와 말할 수 있고, 고양이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
고양이처럼 움직여? 그렇게 생각한 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보았다. 과연 몸이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공터 담벼락으로 다가가 훌쩍 뛰어서 벽을 박차보았다. 순식간에 2미터 높이는 됨직한 담벼락 위에 서있게 되었다. 대단하다. 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이렇게 가뿐하게 움직여 본 적은 없는데! 가볍게 담에서 뛰어내려 충격도 없이 착지하고는 아까 전의 위치로 돌아갔다. 공터에 희미하게 부는 바람이 전신의 솜털과 머리카락을 통해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머리가 조금 가렵다.
"음?"
머리를 조금 만져보자 뭔가가 걸린다- 어? 다시 한 번 만져보았다 부드러운 털의 질감과 함께… 이건 설마? 손가락을 비벼보았다. 이건 역시…
"두, 두목. 지금 혹시 내 머리에…."
"크고 멋진 귀로군. 그댄 꽤나 우리 세계와 상성이 좋은 모양이외다."
"여, 역시….!"
볼 수는 없지만 확실히 느껴진다. 설마설마 했는데…! 황급히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만져보았지만 다른 곳은 모두 -겉보기에는 정상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이 나이에 고양이 귀는 너무 하잖아…. 이봐."
잠시 무릎을 감싸 앉고 고개를 떨어트린 채 낙담했다. 아니, 꼬리가 안 달린 건 다행이지만. 얼굴을 만져본 결과로는 수염도 안 났고.
"그건 이 세계로 들어왔다는 징표 같은 거라 말이오. 그건 그렇고, 자네의 운동능력은 이 곳 이외의 장소에서는 낮 동안은 발휘되지 않을 게요. 귀는…. 알아서 숨길 수 있을 거라고 믿소."
"…믿는다니… 이봐."
즉, 밤이 아닐 때는 고양이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건가.
"뭐, 대화를 하는 정도는 낮에도 가능하다오. 밤에는 자네가 고양이의 능력을 빌어 돌아다닐 때는 다른 인간들 눈에는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비칠게야. 전에도 딱 한명이지만 겹쳐진 자를 본 일이 있는데, 그도 그랬거든."
"…그건, 다행이군."
요즘은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깨어 있어서 수상하게 보이면 곤란하니까.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미아는? 미아를 찾아보니 미아는 그냥 고양이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뭐야, 난 이렇게 변했는데, 미아도 뭔가 고양이귀 달린 소녀라던가 뭐 그런 걸로 변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미아는 그대로인데?"
"…주인. 이상한 걸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미아는 한심한 아들네미를 본 부모 같은 표정으로(인간의 것 중에 비교할 만한 표정은 그것 밖에 없었다.)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뭐, 어찌되었건 이렇게 나의 이중생활이 보름 한정으로 시작되었다. 뭐,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공터에서 의식을 치러 준 고양이들에게 일일이 감사인사를 하긴 해야 했지만.
"주인. 일어나."
미아가 머리 쪽에 새로 난 귀에 말을 걸어왔다. 이 몸이 되고나서 알게 된 건데- 고양이도 어휘력이 사람만큼이나 천차만별이라 사람하고 같이 살지 않거나 어린 경우에는 단어가 부족하거나 전혀 엉뚱하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아직 만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미아는 어휘가 괜찮은 편이다. 안 쓰는 건지 못 쓰는 건지 존댓말은 쓰지 않지만. 그러고 보면 두목은 사람의 손은 타지 않았지만 오래 살면서 붙은 관록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어지간한 사람보다도 말투도 정중하고 어휘도 훌륭했다. 그래도 다들 얼추 말이 통하는 걸 보면 아마도 말의 내용보다는 감정이 우선 하는 것 같다. 왜, 강아지도 훈련 받은 강아지한테 신문~ 하는 것처럼 안경~ 하면 신문을 물어오듯이 말이다.
“아… 아침인가.”
바로 몇 시간 전에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아직도 잘 믿어지지는 않지만, 신경 쓰는 대로 파닥거리면서 움직이는 귀가 머리 위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으니 미쳤거나 꿈이거나 현실일 텐데 광인은 자신이 미친 줄 알 리가 없고,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하니 현실일 수밖에 없다. 기지개를 주욱 펴자 귀가 제 멋대로 파닥파닥 거렸다. 이거, 대체 어떤 구조로 붙어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왠지 알아도 무서울 거 같으니 그냥 마음에만 담아두자.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할 거 같으니 당분간은 머리를 다친다던가 해서 병원 같은 곳에 갈 일이 없도록 조심도 해야겠네. 아니 평소에도 일부러 다치지는 않겠지만.
“주인, 잘 잤어?”
“음… 충분히 잔 것 같지는 않지만, 뭐 이 정도는 괜찮아. 새로 태어난 첫날이잖아? 늦잠을 잘 수는 없지.”
일어나서 이불을 가볍게 털고 우선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의 거울을 들여다보자 얼빠진 내 얼굴 위로 위로 올라가 붙은 고양이 귀가 보였다. 에… 모자라도 쓰고 다녀야 하나 이거. 역시 직접 보니까 남자 놈에게 고양이 귀라니 좀 기운 빠지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귀가 축 쳐져서 머리카락과 잘 구분이 되지 않게 되었다. 음…. 잘 감추면 안 들키겠군.
괴인 고양이남작!…이 되어봤자 인생이 그리 심각하게 바뀔 리도 없고, 미아는 여전히 식탁 아래에서 사료를 나는 식탁 위에서 어제 끓인 된장찌개에 찬밥을 말아먹는다. 서로의 위치가 반대가 될 수야 없잖아? 그러고 보니까 일본에선 이런 된장국에 밥 말아 먹는 걸 고양이밥이라고 부르던가. 뭐, 아무래도 좋지만.
“그러고 보니, 미아.”
“냐아?”
“너 그럼 나 없는 동안엔 그냥 걸어서 외출 한 거지?”
“당연하지. 내 군살 없는 몸매를 보고도 모르겠어?”
자신만만하게 웃는 나의 한 살짜리 숏헤어여….
“…너 분명 그제 저녁에 쓰다듬을 때 옆구…”
“샤아아아악! 하악!”
“….미안하다. 그 얘기 안할게.”
괜히 고양이 세계로 들어갔나 봐. 이젠 한 살도 채 못 채운 고양이한테 구박받는구나. 미아는 남은 사료를 해치우며 털을 다시 누그러뜨린다. 검정 소 누렁 소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그럼, 밥 먹고 난 일단 출근해도 되지? 언제나처럼 부엌 창문은 열어둘게.”
“출근 할 거야?”
미아가 의외라는 듯 물어본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문 여는 날인걸.
“오늘 같은 날이라고 가게 문 열지 않으면 상가 아줌마들이 ‘저 총각 슬슬 가게가 어려운가봐, 망하는 거 아냐?’ 같은 소문을 퍼뜨린다고. 게다가 너랑 내 밥값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란 말이지.”
“이상한 독한 냄새 풍기는 여자들에게 웃음을 팔아가며 말이야?”
…저 녀석 남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단어를 골라서 쓰는 버릇이 있나. 아니, 애초에 남은 못 듣나.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스테인리스 제 셔터가 올라간다. 가게 앞에 기대어 둔 빗자루로 가게 앞을 쓸기 시작했다. 동네 아케이드의 한 구석을 차지한 조그마한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 그것을 운영하는 것이 내 일이다. 액세서리 일부는 내가 만들기도 하고. 뭐, 비즈 공예나 간단한 은 세공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아, 상혁씨 나왔네?”
“안녕하세요.”
상가 사람들이 하나 둘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일단 집에 굴러다니던 국방색 비니를 대충 뒤집어쓰고 나왔는데 아무도 지적을 안 한다. 다행이다. 오픈은 10시. 하지만 어차피 점심시간 근처까지는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게 구석에 마련된 작업장에서 앞치마를 뒤집어쓰고 액세서리 작업을 하곤 한다. 가게 청소까지 끝내고는 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비니를 벗고는 고양이 귀에 솜을 틀어막은 후 다시 비니를 쓴다. 그리고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대에 앉았다. 원형은 주로 파라핀 왁스 덩어리를 깎아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세부 세공이 아닌 전체적인 덩어리를 잡을 때는 개인적으로는 소형 그라인더형 조각기를 선호한다.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시끄럽다는 거지. 소리도 치과 드릴을 연상 시키는 소리라 오싹오싹하고. 사실 수제 은 액세서리라는 게 값이 싼 편은 아니라 개인적으로 부탁 받아서 만드는 일이 많긴 한데, 그래도 이건 잊어먹지 않게 디자인 스케치까지 며칠을 걸려 해 둔 거라 안 할 수도 없다. 어쨌든 일단 나도 만드는 걸 좋아하고. 천천히 왁스를 깎아 나간다. 모티브는 장미 덩굴로 된 반지. 덩굴이 얽힌 모양도 문제지만 군데군데 가시와 잎을 표현해 줄 거라 천천히 깎아나가야 한다.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굵은 할머님 옥가락지 사이즈였던 왁스가 점점 깎여나가며 모양이 잡혀나간다. 조금이라도 강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 십 수 초 정도마다 계속 이미지 스케치를 들여다본다. 가게를 혼자 운영하다 보니 작업시간이 두 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적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손님이 들어와 일단 기본적인 크기를 잡아놓은 왁스 덩어리는 작업대 구석으로 미뤄 놓고 앞치마를 벗었다. 수일 내로 원형은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서 오세요.”
“옷 좀 보려고요.”
오늘 첫 손님은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가씨였다. 뭐, 오늘도 첫 개시가 괜찮을 듯하다. 항상 이렇게 일찍부터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가 되면 아르바이트도 쓸 수 있을 테고, 그럼 액세서리 제작에 전념할 수 있겠지만, 역시 거기까지는 바랄 수 없겠지. 지금으로서는.
9시가 되기 조금 전이면 가게를 닫는다. 물론 손님이 더 있으면 늦게까지도 열겠지만, 어차피 동네 아케이드란 게 늦게 문열어봐야 전기세가 더 나가기 십상이라 그 전에 닫는 쪽이 낫다. 백화점도 그 시간이면 닫지 않나. 그녀가 함께 가게를 돕던 때엔 늦게까지도 있었지만… 에이 관두자. 요즘 들어 해가 길어지긴 했지만, 역시 이 시간대면 어두워지고 나서도 시간이 좀 흐른 후다. 가게를 닫기 전부터 느낀 건데, 밤이 되자마자 감각이 좀 더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한 번 더 깨어나는 것 같달 까.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는 아케이드 근처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늘상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버릇이 되다보니 이젠 집에 가야지-하고 생각하면 다리가 알아서 걷고 있다. 김유신 나쁜 놈. 지가 버릇을 들여놓고 애꿎은 말은 왜 베는 거야. 어린 왕자가 봤으면 경을 쳤을 거다.
“음. 한번 뛰어가 볼까.”
어느새 주택가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밤에 놀 거리는 많아졌다고 하지만 현대의 주택가는 오히려 고도경제성장기 때의 그것보다도 조용하다. 다들 TV다, 인터넷이다 틀어박히기 바쁘니까.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비니를 벗었다. 하루 종일 모자를 눌러써 살짝 땀이 밴 머리에 바깥 공기가 닿자 서늘함이 느껴졌다. 귀를 틀어막은 솜을 빼고, 귀를 한번 털었다. 가벼운 기지개를 켜고 달려보았다. 발을 디딜 때의 충격은 사라지고 경쾌하게 땅을 밀어내는 기분. 그야말로 고양잇과 동물처럼 달리자 풍경이 빠르게 흘러간다. 골목을 비스듬하게 가로 질러 담장 벽에 발을 대고 한번 굴러 담장 위로 올랐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달렸다. 담장이 끝나면 다음 집 담장으로 건너뛴다. 이 좁은 담 위를 잘도 달리는 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희미한 남녀의 말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왜 그래?”
“아니, 고양이가 지나갔나봐.”
“그래?”
두목이 말한 대로다. 고양이처럼 움직이고 고양이처럼 보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숨이 찰 정도로 달리자 벌써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담장에서 훌쩍 뛰어내려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귀는 최대한 갈무리하고. 도어노브를 돌리자 안에서 미아의 냄새가 풍겨왔다.
“미아- 다녀왔어.”
“어서와. 주인.”
미아가 다가와 살갑게 내 정강이에 옆구리를 문지른다. 나도 현관에 쭈그려 앉아 미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서로에게 서로의 냄새를 묻히는 행위.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있음을 말하는 행위.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졌음을 말하는 행위다.
“저녁 먹을래?”
“좋아.”
간결하지만 친애의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화. 언제나처럼 간단한 반찬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나자 어느덧 1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일단 설거지를 하면서 미아에게 물어보았다.
“미아, 난 나갈 건데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주인 나갈 거야? 나도 같이 갈래.”
미아가 현관에 따라 나와 내 옆에 섰다. 고양이를 기르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미아와 함께 나란히 걷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틈을 베어 들어오는 신월의 가느다란 빛이 너무나도 눈부시다.
“으슈슈슈슈슈~.”
자신이 들어도 묘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요즘 며칠 미아와 함께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워서 밤잠을 설치고 다녔더니 잠이 조금 부족하다. 피곤은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서 그만 둘 수가 없다. 고양이 집회에도 참석하고 평소엔 갈 수 없었던 길로 동네를 누벼보는 것은 보통 일생 겪어보지 못할 신선한 경험이니까. 작업대 위의 왁스 덩어리는 그래도 꾸준하게 모양을 잡아서 이젠 전체적인 구도와 디테일이 거의 나오고 있다. 이제 슬슬 조각기 없이 나이프로만 세부 작업을 할 단계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조각기를 갈무리하고 작업공간을 청소했다. 시계를 보니 11시 20분. 30분만 눈을 붙일까? 그렇게 힘을 빼자마자 눈이 스륵 감긴다.
-상혁 씨는 꿈이 뭐야?
‘글쎄. 꿈이라…. 지금까지도 계속 내 멋대로 살아서 그런가…잘 모르겠는걸.’
기억난다. 2년쯤 전에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녀에게 그런 질문은 들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내게 미래라는 개념은 없다. 지금이 즐겁고, 호승심인지 향상심인지 하는 것들도 별로 가져본 적 없다. 돈은 풍족하지 않지만, 생활에 필요한 정도는 벌고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그때는 그녀가 곁에 있었다.
-그래도, 뭔가 앞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
질렸다는 듯이.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아마도 행복의 그릇이란 게 굉장히 작은 것 아닐까 싶어. 나는.’
-금속 세공은 잘 하잖아. 그 쪽으로 나갈 생각은 없는 거야?
그 때는 그녀가 괜한 걸 묻는다고 생각했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어디라도 있는데…
“음?”
인기척에 작업대에 엎드린 채로 붙였던 눈을 살짝 뜨자 누군가가 옆에 서있었다. 머리가 옅은 잠에 절여져 있어 사고가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몸을 세우며 반사적으로 그림자에게 인사를 한다.
“어, 어서 오세요. 잠깐 졸았….”
그렇게 고개를 숙이는 데 무언가가 머리에서 흘러내려 툭하고 떨어졌다. 이런! 오늘치 작업을 끝내고 잠깐 벗어둔 비니를 제대로 쓰지 않은 상태로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화들짝 놀라 비니를 주우면서 흘끔 보자 옆의 꽃가게 아주머니(…라고 해도 나와 열 살 차이도 나지 않겠지만)의 딸인 꼬마애가 보였다. 이름이… 선희였던가… 아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귀를 보는 건가? 곤란하네…. 이럴 때 숨기면 더 집요하게 보겠지? 감출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고…. 뭔가 말을 걸어서 주의를 분산시켜야 되겠다.
“아… 선희 아니니? 무슨 일이야?”
예닐곱 살 정도 먹은 선희는 계속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내가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비니를 은근슬쩍 주머니에 넣을 때 쯤, 아이의 입이 갑자기 질문을 뱉어내었다.
“아저씨. 울어요?”
내가 또 울었나 싶어 잽싸게 눈가를 만져 봤지만 물기는 묻어나지 않았다. 거기다 귀도 안 들킨 모양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느끼면서 아이의 신경을 돌리는데 주력한다.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라고 해야지.”
“그런데요, 눈이 빨개요.”
이런 아이까지 나를 걱정하다니 요즘 들어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치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어 즐겁지 않은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그래, 괜찮아. 그런데 무슨 일로 온 거니?”
“응, 엄마가 이거 아저씨 갖다 주랬어요.”
오빠라고는 죽어도 부르지 않는 구나…. 아이가 내민 것은 상가 회보였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이걸 직접 건네주려고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정말 미안한 일이다. 고맙게 받아들었다.
“응, 고맙다. 선희야.”
“승희인데.”
불만스럽게 아이가 입술을 내민다. 아… 승희였나.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니 뭐 알 리가 있나. 어쨌든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기 때문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승희야 고마워. 코코아라도 마실래?”
“응, 오빠.”
….곧장 말이 바뀐다. 요즘 애들 무섭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나이프를 달굴 때 쓰는 알콜 램프에 불을 붙이고, 티포트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심이 지난 무렵의 한낮, 나는 따듯한 코코아를 준비하고 어린 아이는 가게를 기웃 거리고 있다. 조금은 풀린 마음이 되어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기억은 돌이켜 보면 대개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딱히 말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설명도 필요하지 않은 채 그저 서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구성되어 흘러가는 시간. 아니,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게 멍하게 있는 시간 동안 정도는 나도 분명 행복한 삶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물이 끓어올라 머그컵을 두잔 준비하고 코코아 파우더를 담은 후 물을 붓고, 설탕과 소금을 조금만 넣은 후 우유를 섞었다.
“승희야, 코코아 마시자~.”
“으응, 그런데 오빠.”
잔을 받아들며 승희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왜?”
“머리에 그거 뭐예요?”
….아차. 제대로 감춰진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그나저나 자기가 얻을 걸 다 얻은 타이밍에 남의 약점을 지적하다니… 이 아이 보통이 아니야… 이럴 때는 어른의 특기-적당히 속여 얼버무리기를 쓰는 게 상책이다.
“아, 이거? 고양이 귀 모양 머리장식이야. 귀엽지?”
“오아~”
차라리 아이가 보기 좋으라고 늘어진 귀를 위로 잡아당기며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이는 잠시 멈칫멈칫 하다가 조그맣고 통통한 아이의 손을 뻗어 나의, 아니 고양이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느라 입가 정도 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입이 오물 오물거리며 여러 모양을 띄어가는 것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재미있니?”
“귀여워!”
…! 아,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렇게 귀 가까이에서 소리를 치니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잠깐 굳어있자, 승희는 귀를 이리저리 밀고 잡아당기며 눈을 반짝(물론, 어디까지나 그럴 거라는 가정이다. 입 위로는 각도 상, 보이지 않는다.)거리며 선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거 좋겠다. 아저씨. 나 이거 주면 안돼요?”
“…또 아저씨라고… 아니, 이거는 소중한 사람이 준 거라 안 되는데-.”
“우우-!”
내가 거절을 -당연히 표명하자 승희는 불만이라는 듯, 내 귀를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아, 아파! 이대로는 반 고흐가 되어야 할 판국이다. 결국 나는 승희의 날뛰는 손을 부드럽게 감싸고 천천히 밀어내며 타개책을 내어 놓았다.
“미안, 미안. 대신 오빠라고 부르면 내일 이거랑 같은 머리띠를 만들어 주면 안 될까? 응? 코코아 식겠다~.”
“나 이거 주고 오빠 거 만들어요. 히잉~.”
아이들이 그렇다. 동물하고 비슷해서 미래라는 개념이나 과거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그래서 참을성도 없을 수밖에 없고, 당장 혼나도 곧 비슷한 말썽을 피우게 된다. 대응책? 그냥 알아들을 때까지 설득 하던지 아니면 혼을 내서 쫓아내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 일에 집중을 못하게 다른 것으로 주의를 끌면서 방해를 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딱히 달리 신경을 집중시킬 것도 없고, 자신이 할 말이 없다고 아이를 혼내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질 않는다.
“자자~, 일단 코코아부터 마시고, 오빠가 내일 만들어 준 거 마음에 안 들면 이거 줄게. 응? 이건 남 주면 안 되는 거거든.”
“우우.”
아이는 볼을 부풀린 채로 불만스럽게 코코아를 맛있게 마셨다. 불만스럽게 맛있게 먹는다니 이 아이는 정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얼빠진 생각을 했다. 아이가 코코아를 다 마시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을 때 즈음, 머리에 비니를 뒤집어쓰자 마침 타이밍 좋게도 꽃가게 아주머니가 와서 승희를 데려갔다.
“그래서 주인, 오늘은 그것 때문에 그 가죽을 만지작거리는 거야?”
“그래. 뭐, 어쩔 수 있냐.”
“주인의 설명대로라면 그 아이 내일쯤엔 잊어버릴 수도 있지 않나?”
간식을 먹던 미아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어온다. 나로 말하자면 전에 사용하던 털가죽 중에서 내 귀와-라고 해도 미아나 나나 같은 검정색에 안에는 흰 털이 돋았다.- 색이 비슷해 보이는 것을 골라 고양이 귀 머리띠를 만들고 있다. 플라스틱 검정 머리띠에 검정색과 흰색 가죽을 맞붙여 만든 귀의 속에 피아노선을 넣어 두가지를 연결시켜 어느 정도 건들거리게 만들어보았다. 이리저리 흔들어본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안 잊어버릴 수도 있잖아. 그러면 더 귀찮아 질 거고. 거기다….”
“거기다?”
“…음. 무엇보다 될 수 있으면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 그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해도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흘끗 미아를 보자 흡족한 듯도, 비웃는 듯도 한 표정으로 미아가 말했다.
“말하던 당시엔 진심이 아니었어도 약속의 때까지만 이행할 수 있으면 거짓말이 되지는 않는단 말이지. 그래봤자, 그 귀가 장식품이라는 거짓말은 그대로인데 말이지. 하여간, 주인도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부류다.”
“그래, 그건 동감이다.”
그래, 사실 이 성격 탓에 지금까지 손해 본 게 더 많겠지. 하지만, 반대로 지금까지 내 근처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다 이 성격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손해도 아니다. 어차피 인생,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마이너스만 아니어도 남는 장사지 뭐. 그렇게 생각을 하며 투박한 손가락을 놀려 가죽을 뒤집어 재단한다.
“그러고 보니, 미아.”
“와옹?”
전부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데, 물어봐도 되겠지.
“너 말야, 그 개다래나무에 그런 힘이 있는걸 알고 날 데려간 거야?”
아니, 정확히는 간 건, 나지만. 어느새 간식을 다 먹은 미아가 웃으며 앞발을 핥았다.
“아니. 처음 갔을 때는 몰랐지. 내가 두목을 알게 된 것도 세달 정도 밖에 안 되었는걸.”
“그래? 하긴 너도 이제 한 살 정도 밖에 안 되었구나.”
그렇게 말하자 미아는 고개를 쳐들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고양이 나이로 한 살이면 다 큰 거야. 인간으로 말하면 청장년에 해당한다고.”
…청소년이겠지. 청소년도 다 큰 건 아니야- 라고 말해주었다.
“주인 쉬는 날 집안에 있으면 그 술이란 것만 마시잖아. 그래서 주인이랑 같이 밖에도 나갈 겸, 겸사겸사해서 종종 거기로 간 거야. 개다래나무가 좋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갔다거나 한건 아니라구.”
“…아니, 물도 마신다만. 혹시 동네 고양이들이 나 볼 때마다 뭔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는게 네가 날 맨날 술만 마시는 한심한 남자라고 소문내서 그런 거 아냐?”
손은 손대로 놀리면서 입은 입대로 말을 자아낸다.
“아냐. 고양이들은 소문 수집은 잘 해도 굳이 먼저 퍼트리지는 않아. 그냥 주인한테는 한심하다는 냄새가 무럭무럭 피어나거든.”
“한심한 냄새도 있냐?”
짐승들은 인간의 감정이나 어느 정도 됨됨이의 바탕이랄까 그런 것을 냄새로 맡을 수 있다는 모양이다. …아니, 그럼 난 본바탕부터 한심하단 말이야!?
“우오-”
눈이 휘둥그래진 승희의 표정이 귀엽다. 고양이 귀 머리띠를 머리에 쓴 채로 흔들어도 보고,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거울을 들여다본다. 표정에서 빛이 나는 구나 아주.
“어때, 마음에 들어?”
“오오!”
아까부터 말을 못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가게 청소를 할 때부터 뒤에서 빼꼼히 지켜보고 있는데, 종이봉투에서 꺼내서 청소하는 동안 써보라고 주었더니 청소가 다 끝나도록 저러고 있다. 역시 만들어 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대에 앉아 반지의 러프 스케치를 펜으로 수정해 나가면서, 승희에게 말을 걸었다.
“승희, 오늘도 코코아 마실래?”
그때 문에 달아둔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한테 보여주고 올게!”
…어지간히도 신난 모양이다. 수정한 스케치를 보며 알콜램프에 불을 붙이고는 하는 김에 티포트도 올려두었다. 왁스 덩어리를 다룬 젝토나이프로 다듬는다. 여기까지 오면 정말로 작은 실수도 돌이키기 힘들기 때문에 할 일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작업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잎사귀와 가시가 붙을 곳을 제외한 덩굴을 한꺼풀 벗겨낸다는 느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긁어내기를 반복한다. 뜨거운 젝토나이프에 왁스가 녹기 때문에 저항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네모진 덩어리가 군데군데 붙은 덩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내일부터는 확대경을 꺼내서 작업해야할 듯싶다. 생각난 김에 티포트 안을 들여다보자 물이 거의 졸아있었다. 은근슬쩍 점심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음- 홍차나 마실까.”
티포트에 물을 보충하고 홍차 잎이 든 깡통을 찾아내어 뚜껑을 열려는데 도어벨이 울렸다. 작업용 앞치마를 벗을 겨를도 없이 습관적으로 몸이 뒤로 돌아서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우리 승희가….”
꽃에 물을 주다가 튄 듯한 물방울이 묻은 앞치마를 두른 옆집 꽃가게 아주머니가 거기 서 있었다. 신난 승희와 함께 난처하달까 미안하달까 구분이 잘 가지 않는 표정을 하고.
“승희가 오빠한테 이 고양이 귀 머리띠를 받았다고 해서요.”
“아, 그거요. 승희가 관심 있어 보이기에 그냥 남는 재료로 하나 만든 겁니다.”
뭐, 뻔하다면 뻔하지만, 아이가 이웃집에서 무언가 받았다고 하면 가만있을 수만도 없는 것이 부모다. 하지만 그런 호의의 보답도 귀찮아서 대충 넘기고 싶다. 싫은 건 아니지만. …관계가 어설프게 깊어져 봤자… 봐. 서로 귀찮을 뿐이잖아? 애초에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시작한 일이고 말이지. 여기서 그만두어도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도... 저 털.. 꽤 비싼 가죽이죠?”
…비싸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좋은 물건인데.
“아, 아닙니다. 그냥 남은 재료예요. 이제 액세서리 중에서 털이나 가죽 패치 같은 건 안 팔거든요.”
그렇다. 털이나 가죽 같은 부드러운 물건으로 만들던 액세서리는 대개 그녀가 만들던 것이다. 대개의 그녀가 두고 간 물건은 정리 했지만, 털가죽이나 몇 가지가 남아있던 것이 생각난 것뿐이다. 오히려 이런 일로 사용해버릴 수 있다면 이쪽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래도… 이거 번거롭게 해드린 게 아닌가 싶네요.”
“아니요. 뭐, 괜찮습니다.”
난처함을 지우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때 싱글벙글한 승희가 아주머니의 손을 잡아 당겼다.
“엄마, 엄마. 오빠 귀도 예쁘다!”
…저 녀석 쓸데없는 소리를. 무언가 다른 말로 주의를 돌릴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엄마의 손을 끌고 와서 내 앞에 섰다.
“오빠! 오빠 귀도 보여줘!”
“승희야… 오빠 귀찮게 하면 안돼요.”
아주머니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확실하게 말해서, 그냥 보여주고 빨리 끝내고 싶다. 길어져도 리스크가 줄어둘 것 같지도 않으니까 최소한 시끄러운 것뿐이라도 해결하고 싶다.
“알았어. 잠깐 기다려 봐.”
작업장에 들어가서 앞치마를 벗어 의자에 걸어놓고 비니를 벗었다. 귀를 세우고 머리를 빗어 귀의 뿌리부분을 적당히 감추고 거울을 확인했다. 음. 이 정도면 되겠지. 깜박하고 놔두었던 티포트의 불을 끄고 홍차를 세잔 타서 들고 나갔다. 얼굴엔 어디선가 적당히 빌려온 웃음을 걸고.
“자, 기다리셨습니다.”
“어머나.”
아주머니는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면서 웃었다. 승희는 거울에 나란히 우리 둘을 비추어보며 재미있어하고 있다. 고양이 귀를 단 두 명과 난처해하면서도 주저 없이 잔을 받아드는 한 명의 티타임이 지나간다.
“헤- 그래서?”
“…그 뒤에 거의 곧장 여학생들이 찾아 와서는 승희랑 나를 보더니 꺄아꺄아 거리더라. ‘오빠 네코미미 모에예요?’인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지. 요즘 여자아이들은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잽싸게 끝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꼬여서 번지려면 여기까지 번지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놀린다.
“그거하고 지금 또 다시 그 귀 장식을 만드는 게 무슨 관계야?”
“아주머니도 주려고. 일단 장식품이라고 둘러대었으니 계속 덮어 두려면 다른 사람들도 더 해두면 눈 돌릴 거 아니냐.”
“…점점 일을 크게 만들어요. 하여간.”
…뼈저리게 동감이야. 고양이 비웃는 소리에도 반론을 못하겠으니…. 얼른 만들고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야겠는걸. 일단 내일만 지나면 가게 쉬는 날이니까 하루만 더 시달리면 된다.
하지만, 정말로 큰일은 그 뒤였다. 어제의 고양이 귀 소문이 퍼져버렸는지, 왠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리기 시작해버렸다. 응, 그렇게 되어 버렸다. 뭐,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옆의 꽃가게에도 승희와 아주머니의 두 명이 고양이귀를 한 덕인지 손님이 조금 생겼다던가. 어쨋다던가. 웬일로 사람이 몰려서 반지 원형에는 손도 대지 못해버렸다. 이거야 원.
“오빠, 오빠! 여기 좀 봐요!”
“그 귀 나도 한번 달아보면 안돼요?”
…대충 이런 상황이다. 아니, 그보다 요즘 고등학교는 월요일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끝나는 거냐?! 성격상 손님이 먼저 물어보거나 하기 전에는 “손님 안목 있으시네요. 요즘 이거 잘나가요”같은 말은 하지 않는 성격이라 어느 정도는 손님이 와도 별 문제없지만 이렇게까지 많은데다 붐비기까지 하면 역시 정신이 없어진다. 일 년 전에는 갑자기 손님이 몰려도 별 문제도 없었는데…. 이런 걸로 그녀의 공백을 느끼게 된다. 하찮은 곳에 별 것 아닌 공백이 점점 침식해 온다. 나도 이젠 어른이니까 쉽게 표정에야 드러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사소한 기억에도 분명하게 상처 입는 나를 느끼게 된다. 그건 마치 실수로 삼켜버린 유리조각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그 존재를 깨닫고 내장이 움직이면 속을 갈가리 찢어버린다. 그렇지만 이렇게 붐비는 여자들 사이에 서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멍하니 그녀의 그림자를 찾아 눈동자가 허공을 헤메인다. 입맛을 쓰게 하는 생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도, 그것은 이미 살갗 밑에 파고든 가시와 같아서 떨칠 수도 숨을 수도 없이 어디까지고 쫓아온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관련 없이 역시 돈 잘 벌리는 건 좋은 일이지."
"…속물 같으니."
공원에서 새로운 캣푸드 깡통을 먹어치우면서 미아가 그런 말을 한다. 그러는 너도 그 돈으로 산 밥 먹고 있는 거라구. 쳇. 사람이 여자들한테 시달리면서 벌어온 돈이니 감사하란 말야.
"그러고 보니 주인. 주인하고 만난게 이 공원 근처에 있는 곳이었지?"
"음. 그러고 보니 그랬지."
그녀가 떠나고 몇 달 후 였던가 멍하니 가게에 불만 켜고 앉아 있다가 가게 문을 닫자마자 맥주 한 캔을 사서는 이 공원에서 기계적으로 술만 홀짝이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비 오던 어느 추운 날, 우산을 편 채로 공원의 정자에서 쪼그리고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우산을 내팽개치고는 공원 반대쪽의 길로 걸어갔다. 그날, 펫숍의 쇼윈도에서 미아를 보았다. 모여 자고 있는 다른 새끼 고양이와 달리 혼자 힘없이 비오는 창밖을 쳐다만 보던 마른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푹 젖은 남자가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휙 달려서 사라지더니 다시 우산을 쓰고는 달려와서 깜짝 놀랐다구. 뭐, 그때는 그게 우산이란 것도 몰라서 날개 같은 건가 싶었지만.”
“그래서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렇게 털을 세워댔구나.”
“당연하잖아. 이상한 놈과 둘이 있게 됐다 싶었으니.”
난 그냥 그때 내가 젖어 있어서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 인상 덕분인지 미아와 친해지는 데는 일주일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뭐, 일단 화장실은 잘 가렸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큰 불만은 없었지만. 설령 친근하게 굴지 않는다고 해도 확실히 미아가 온 이후로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던 것도 사실이다. 티비나 가전제품이 내는 소리 이외에도 무언가 분명한 체온을 가진 존재가 집이라는 작은, 최종적인 공간에 나 이외에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명확하게 사람을 안정시킨다. 물론, 생쥐라던가 하는 경우는 조금 예외겠지만.
“그래도 주인. 절대 화는 내지 않았지.”
“옳지 않은 일이잖아?”
세상에는 자기 외롭다고 애완동물을 구입해서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화풀이로 애완동물을 괴롭히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말이지.
“인간이 언제부터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 않는 생물이었어? 그런 생물은 없어.”
“한살도 제대로 안 된 녀석이 참 말은….”
고양이가 한 살 가까이 되면 다 큰 거라고 미아가 또 궁시렁 대는 것을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