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서울의 일요일은 사람이 붐비는 평화로운 거리의 이미지다. 이 땅은 치안도 좋고, 사람들도 평화에 물들어 있다. 이따금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최소한 백주대낮에 총을 쏴대는 놈들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세 들어 사는 옥탑방이 있는 빌딩의 옥상난간에 반쯤 누워서 차가운 사과를 깨물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즐거운 일에 속한다. 화단에 떨어지도록 대충 다 먹은 사과를 버렸는데 경비나 청소원이 내 짓인 걸 모르는 건 편리한 일에 속하고. 스모그가 어쩌고 황사가 어쩌고 하는 서울이지만 여름이 오기 전의 봄엔 생각 외로 햇살 좋은 날이 많다. 내가 버려져 있던 브롱크스의 차가운 뒷골목과는 대조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풍경이기 때문인지 신문인지 잡지 쪼가리가 굴러다니던 그 골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서울은 치안도 좋은 편이고 요즘은 날씨도 좋다. 여자친구가 없어서 할 일이 없는 건 조금 슬프지만 큰 문제는 대체적으로 없다. 아, 물론 저번 일로 사용한 총기는 폐기했으니 다음에 쓸 거 구해야겠지만, 한동안은 일도 없을 테고 너무 자주 사는 것도 좋지 않으니... 뭐 관두자. 마침 일요일에 딱히 할 일 없을 만한 사람이라면 한 명 있다. 닥터에게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직통 전화 뚫어만 놓으면 뭐하나 이럴 때 써야지.
-달칵.
신호음도 가지 않는 닥터 전용의 직통은 회로가 연결되며 나는 저 소리로만 전화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공포영화 같은 데서 보면 전화 신호음만 울리는 장면이나 그런게 싫었다나? 자기 핸드폰은 그나마 진동조차 없고 손목시계 밑에 장치해둔 전극으로 전기 자극을 준다고 하던데... 하여간 매드사이언티스트로서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인재인건 확실하다. 전화를 받았으니 인사를 해야겠다.
“닥터? 나야.”
“어, 바렐? 잘 지내?”
닥터는 나를 바렐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한다. 주로 자기가 실험했거나 시술해 준 걸 상대의 별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닥터의 네이밍 센스인 것 같다. 뭐, 닥터도 그런 개조는 나 밖에 요청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으니까...
“응, 요즘 날씨가 좋아져서 말야. 여긴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날씨가 좋아질 텐데 말이지...”
“날씨 좋은 게 문제라도 되냐? 하여간 너 좀 성격 이상해.”
“아냐. 당신이 누구한테 지금 성격이 이상하다는 거야? 상태는 전체적으로 괜찮은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번쩍번쩍해서 그렇지.”
요즘처럼 햇살이 강해지면 닥터가 만들어 준 오른 팔이나 상반신 일부는 미묘한 금속성 광택을 띄운다. 은녹색이랄까 확실히 그냥 사람 피부같지는 않다. 앞으로는 자켓을 입거나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사람들 눈을 피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다. 영국이나 흐린 날씨가 많았던 북구 쪽에선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역시 우리처럼 눈에 띄어서 좋을 일 없는 직업 가진 사람들에겐 신체적 특징은 치명적이다.
“뭐 그 부분은 어쩔 수가 없어. 금속성분도 없는데 저절로 광택이 나는 건 계산 밖이었으니. 거기다 그걸 해결 한다 쳐도 다시 갈아엎는 건 무리야. 몸이 못 견딜걸.”
“역시 그런가... 붕대라도 감고 다닐까.”
그것도 눈에 띄기는 마찬가지겠지만. 뭐, 하여간 닥터가 못 고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근데, 닥터. 요즘엔 어디쯤에서 지내?”
“요즘은 실험이 별로 진전이 없어서 히말라야 쪽에서 놀고 있는데? 왜, 아직 메인테넌스 할 시기는 아니지 않나?”
“식사나 좀 할까 했지. 그나저나 히말라야라니, 티벳에서의 7년이라도 찍을 생각이야?”
“아냐, 이쪽이 요즘 경찰이 적어서 그렇지 뭐. 영혼의 구제 같은 거에 신경 쓸 나이도 아니고. 그나저나 식사라니 그런 건 좀 더 보통 여자랑 하지 그래. 아, 너한텐 좀 무린가.”
몇 가지의 이유로 젊은 여성(랄까 나이 많은 소녀랄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닥터지만, 해왔던 일들이 일들이라 일단은 국제적인 지명수배자라서 역시 경찰이나 군대가 적은 쪽을 선호하고 있는 모양인데.... 요즘 무리한 것 같아서 은근슬쩍 닥터한테 검진 좀 받으려 했더니 히말라야를 올라야 하나? 아니 그 이전에, 왜 닥터까지도 날 정상적인 연애는 불가능한 인간으로 규정짓는 거야? 뭐, 별로 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히말라야라... 그쪽에 다녀오기는 좀 힘들지도. 일단 나중에 치료 받아야 할 때 되면 다시 연락하지.”
“그래. 못 써먹게 고장 내지는 말라고. 네 몸은 더 이상은 뭐 새로 집어넣거나 하는게 무리니까.”
“아아. 고마워 닥터.”
인사를 마치자마자 뚜-. 하는 소리와 함께 신호가 끊어졌다. 손 댈 수 있는 것은 팝콘기계에서 인공위성부품까지도 죄다 뜯어고치는 성격이면서도 통화 종료 신호음은 그대로다.
닥터 멜리나 프로스트. 국제수배범으로 42개국에서 받은 국제재판(물론 출석은 안했다.)의 형량이 852년의 징역형에 벌금형을 포함하면 소송관계서류만 쌓아서 달로 가는 계단을 만들 거라는 농담의 주인공. 참고로 내 전 신분에도 자기 죄명 몇 개인가를 전가해놔서 나도 극악무도한 지명수배범으로 만들어줬던 전형적인 안하무인 천재다....라고 하면 안하무인 천재는 다 범죄자라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뭐 세탁 신분도 그 직후에 만들어 줬으니 병 주고 약 주고랄까. 아마 저 이름이랑 얼굴도 가짜인 건 틀림없는데 세탁을 한 위조신분에조차 저런 천문학적인 형량이 내려진 걸 보면 타고난 트러블 메이커임에 틀림이 없으리라. 하여간 대단해. 여러 의미로.
닥터가 만들어 준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살펴보면 접합부는 마치 살이 튼 자국처럼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인간이 자신의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낼 수 있는 근력의 한계는 대략 원래 근효율의 15~20%라는 것 같다. 이 이상 힘을 내면 근섬유가 파열되고, 골격과 관절에도 무리를 준다. 인공 근육이 큰 각광을 못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이 근육통에 걸리듯 근섬유가 파열되면 자연치유가 안 되는 점이다. 그러나 닥터가 만든 강화세포는 어마어마한 근효율을 자랑하는 데다 근육통에 걸리는 일도 없다. 보다 정확히는 효율은 극대화 시키고 무리가 가는 레벨로의 출력은 애초에 셧오프 해버린다. 나의 상반신의 70% 가까이를 뒤덮은 이 강화세포들의 근육이 휘두르는 팔이 하나의 총신이 된다. 아음속의 속도로 휘둘러지는 팔의 안에는 세 군데로 나뉜 배럴이 들어가 있고 어깨 쪽에서 탄환이 가속되며 세 개의 배럴이 일직선으로 배열되는 일순간에 총구라고 할 수 있는 권골부에서 [던져진다]. 순수한 물리 운동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아음속 돌팔매. 덕분에 내가 총 없이 저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쪽의 인간들 사이에서는 라이플링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뭐, 원리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았다면 지금쯤의 별명은 슬링이나 피쳐가 되었을지도... 이걸 위해 나의 오른쪽 상반신 전부와 왼쪽 등허리의 근육과 골격은 전부 인공품으로 대체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대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었겠지만. 내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봤자 닥터를 빼면 정말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가끔 그럴 바에야 왜 더 강력한 개조를 받지 않았냐고도 하는데, 그런 건 무리다.
음속으로 움직이는 개조인간을 생각해보자. 우선 다리. 다리를 빠르고 정밀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실제로는 인간은 네발짐승에서 진화했으므로 팔의 움직임, 허리 등의 동조도 생각해야 한다. 달리는 치타의 근육이 얼마나 정밀하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당장 내쇼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라도 하나 구해다 보면 일목요연할 것이다. 이것이 음속을 낼 수 있게 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음속에 맨몸으로 견딜 수 없다. 공기의 벽은 무시할 수 없다. 시속 150㎞ 정도의 바람도 맨몸으로 맞으며 운전하는 것이 힘들다. 몸의 골격과 피부가 마하의 충격파와 그 속도를 내는 다리의 출력에 버텨야 한다. 출력을 위한 에너지의 공급을 위해 소화계, 마하의 속도에서 안정적인 산소공급을 위해 호흡계, 그것을 나르는 피를 고속의 관성 하에서 안정적으로 나르기 위해 순환계를 바꿔야 한다. 혈액자체의 조성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마하의 상태에서 주변을 소리로 인지할 수는 없으니 시신경을 중점으로 신경계도 고쳐야한다. 물론 그 정밀도를 위해 뇌에도 개조가 가해져야한다. 인간으로서의 외형을 위해 공기마찰로 불타지 않도록 모발 등도 내충격, 내화소재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내 뇌에도 약간의 제어장치가 붙어있다. 이미 인간을 개조하느니 로봇을 만드는 게 빠를 정도로 인체개조는 생각 외로 해야 할 것이 많다.
닥터의 개조는 원래 기본적으로 신체 대용품을 연구하던 것의 부산물이다. 고효율의 강화근육세포와 강화피부세포. 뭐 이것도 내충격성 등을 위해 아음속 정도를 한계로 설정되어 있다. 이편이 무소음 사격이 가능해지게 하기도 하고. 팔로 탄환을 쏘아낸다는 단 한 가지에 특화된 개조. 컴퓨터로 탄도를 위한 제어가 행해지기에 격투전 등에는 보통 인간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없게 제어되고 사격 이외의 상황에선 내부 감염을 막기 위해 권골부의 개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전투 중엔 탄환 보급도 안 된다. 투척하는 방식이지만 개념은 어디까지나 사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투척무기를 사격시의 근력으로 던지는 것도 무리. 수많은 금지와 개조를 넣음으로서 겨우 단 한가지의 특수기능을 실현한 것이다. 애초에 강화 근육이 가진 내충격 성능 자체가 충돌상황과는 관계없는 그야말로 움직이기 위한 한계 강도다. 그 힘으로 사람을 때리면 내 팔도 같이 파괴 될 정도. 그래서 닥터의 말에 따르자면 이것은 일본도와 같은 예술품이라고 한다. 일본도는 칼의 재료나 디자인, 제조법등의 특성상 [휘둘러서 벤다]라는 행위에 특화되어있다고 한다. 아치형으로 휜 칼 모양의 특성상 찌르기에는 완전히 적합하지는 못하고-손잡이의 형태도 이유의 하나인 것 같다- 칼등으로 다른 칼을 막아낸다던가 하는 경우 아치형 구조상 부러지기도 쉬우며, 크기가 다양하긴 하지만 서양의 대형검처럼 [찍어서 썰어내는]느낌으로 쓰는 것도 힘들다. 칼이라고 하면 유명한 것 중 하나가 일본도인데 범용성은 절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전신에 이것을 적용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나의 폐다. 오른 팔이 사라진 사고에서 나의 오른쪽 폐도 함께 사라졌다. 왼쪽 폐도 지금은 폐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오른쪽 흉곽에 들어간 닥터의 인공 폐는 놀라운 고효율로 나를 지탱하고 있는데, 고성능을 자랑하는 닥터 멜리나의 인공장기 라인업에도 치명적인 결함은 있었다. 신체에 일정비율 이상의 장기와 강화 세포를 이식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차라리 로봇을 만들어서 사람 거죽을 입히는 게 쉬워. 100% 인공세포랑 장기만으로 조합해서 사람 한명 분을 만드는 것도 무리야. 인공세포와 장기 내에서도 서로 거부반응이 일어나.”라고 닥터가 말했다. 아니 뭐, 애초에 나는 원래 나였던 부분이 최대한 남게 하고 싶었으니까 이쪽이 더 좋다. 초인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닥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서 가장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 준 거라고 생각한다. ...대신 나도 꽤나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일단은 생각하니까 뭐, 그 정도만 감사를. 안 그러면 거스름이 남을 거다. 틀림없다.
그나저나 통화도 싱겁게 끝났고... 할 일도 없으니 바이크라도 몰고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팬텀 스티드는 눈에 띄니까 좀 평범한 걸로.
“주말을 위해 여자 친구라도 만들어야 하나.”
RHC. Right Hands Club. 특별한 능력을 오른손에 가진 사람들을 모은 집단. 썸은 그 세 번째 리더다. 전대의 멤버들은 모두 사라졌고, 사실 RHC 세 번째 멤버들은 다 썸이 모은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이름을 제하곤 전대와의 연관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대의 설립과는 그 의지도 설립배경도 다르다. 어쩌다 일반인과 연루되어 일을 맡는 일도 생기지만 대부분의 경우 M-그는 마멀레이드라는 애칭으로 부르는-이라는 코드네임의 에이전트 매니저에게 일을 받는다. 전대 RHC와의 연결점이 있다면 썸 그 자신, 그리고 M과의 커넥션 정도일 것이다. 하는 일은 대부분 첩보, 방첩, 파괴활동. 그런 점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서 일반인에게 불가능한 초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은 것은 당연하지만 굳이 RHC라는 이름을 계승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 이름을 계승하고 굳이 오른 손에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모은 이유는 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무래도 당분간 한국을 떠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 뭐, 그렇게 되면 높은 확률로 실드의 한국 지부 박멸은 무리가 되겠지만.”
종로의 노천카페. 자신의 생각을 물어온 여성에게 썸은 그렇게 대답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에이전트 매니저 마멀레이드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유독 실드를 그렇게 적대하는 이유가 뭐야?”
“뭐냐니, 말은 잘하네. 자기가 가져오는 일도 실드 관계 일 뿐이면서.”
“아닌 일들도 꽤 줬잖아.”
“....집나간 개 찾는 거 하고, 이삿짐 돕는 건 에이전트 매니저한테 안 받아도 되는 일 같다.”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는 썸이었지만, 마멀레이드는 커피스틱으로 그의 이마를 쿡 찌르며 말했다.
“자꾸 말 돌리지 말고. 진지하게 묻는 거야.”
“진지하게....라고 해도 말이지...”
썸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마멀레이드가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 아직도 선대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썸의 눈가가 약간 찌푸려졌다. 선대... 즉, 이전의 RHC의 설립자이자 리더였던 그를 뜻하는 것이다. 이젠 슬슬 미지근해지는 실론을 한 모금 들이키는 척 하며 시선을 돌렸다.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는 할 수 없지. 적어도 내겐 아버지나 형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 날...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에 그는 내게 당신이 이 세계를 떠나길 바랬어. 하지만 그가 떠난 후 당신은 거꾸로 자신이 새로운 RHC가 되기를 원했지.”
젊은 에이전트 매니저는 그날을 회상했다. 세상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듯한 눈이 내려 귀가 멀어버린 그 날. 마지막 일을 떠나던 선대는 그녀에게 유언과도 같은 그 말을 남겼다. ‘녀석이 밝은 곳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그가 사라지고 2년 후, 유럽의 한 마을에서 링과 만난 썸은 마치 무슨 계시를 받은 것처럼 고작 1년 만에 현재의 멤버를 모두 모았다. 그리고는 대부분의 일거리는 실드와 연관된 것만을 골라서 받고 있다. 일단 마지막을 본 것이, 그리고 그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도 자신인 만큼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다.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아마 말리진 않을 테지만. 그녀는 엄연히 일과 정보를 팔고 돈을 챙기는 프로인 것이다. 오늘 썸과 만난 것만 해도 앞으로의 대략의 활동 선정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던지 앞머리를 살짝 옆으로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선대가 예전에 한 말이 있는데...”
“원한이니 복수니 하는 걸로 일 하는 놈은 오래 못 간다는 이야기?”
말 도중에 청년은 말을 잘랐다.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눈치 챈 것이다.
“그래. 알고는 있지?”
“당연하지. 설마 내가 선대에 대한 단순한 원한 만으로 움직인다고 생각 한 거야? 나도 일하고 돈 받는 프로라고.”
뭔가 거시적인 계획이 있는 것일까? RHC멤버들이 사람 같지 않다는-물론 능력 면에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드 같은 거대 조직에 장기적으로 큰 데미지를 주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이 그다지 정의로운 인물들의 모임이 아니란 것은 직접 행동에 참가하지 않는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M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럼, 뭐 때문인데?”
“복잡한 개인적인 원한.”
실수다. 이런 놈한테 뭔가 기대한 게 실수다. 믿어서 손해 봤다는 감정이 이렇게 볼품없는 일로 들 수도 있구나-하는 심정이 되어버린 M이었다.
“....지금 시비거는 거지?”
“화내면 주름 생긴다.”
“너 때문이잖아!”
끝까지 뺀질뺀질해 가지고는. 정말 한 대 확- 쳐버리고 싶다.
“핑계거리가 되는 건 싫은데-.”
“맞을래?”
“맞는 건 더 싫은데-.”
따앙-! 결국 퓨즈가 끊긴 M이 깔끔한 끊어치기로 썸의 이마에 훌륭한 꿀밤을 날렸다. 주변 테이블의 사람들이 대화를 멈추고 돌아볼 정도로 맑게 울리는 소리가 났다. 혹시 이 합성인간이란 놈들은 두개골 속이 비어있는 걸까? 그런 고찰을 하던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뒤늦게 눈치챘다. ‘아읏...’ 얼굴을 붉혔다. 항상 쿨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는 에이전트 매니저들로서는 이미지 관리에 항상 신경을 쓰는데도.
“아우- 아우-. 너 전투요원으로 나설 생각 없냐?”
“매가 부족하시군.”
다시금 조금(매우 조금) 냉정을 되찾은 그녀는 이마를 감싸 쥔 청년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는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서 커피는 조금 미지근해져 있었다.
“난 녀석들이 만든 시제품이잖아.”
“자길 물건처럼 이야기 하는게 아냐.”
썸이 말하자 M은 딴지를 걸었다.
“임무 때라면 어차피 에이전트들은 물건이나 다름없어. 그리고 난 애초에 그걸 위한 존재로 만들어 진 거고.”
“그래, 그래서?”
“너도 잘 알겠지만 1세대 합성인간은 착상 전 조작과 출산 직후의 조정 외에는 인간과 다를 게 없지. 9개월 가까이 태내에 있어야 하고 성장 자체도 크게 다르지 않고 아주 조금의 기능 관련 외에는 다른 선기억도 없지.”
합성인간은 일종의 유기적인 사이보그나 뭐 그런 종류인 모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그런 존재라는 것은 선대가 그를 주워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긴 초능력이라면 모를까 몸에서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물질을 물리적으로 생성해내는 일 따윈, 생각 할 수도 없다.
“그럼 인간에 가까운 거잖아.”
“그래서 난 대리모도 필요했고, 사회적으로 키워줄 부모도 필요했지. 인격 형성의 문제가 있으니까. 그런데, 놈들은 그 모든 걸 주고는 다시 가져갔어. 그래놓고는 관심 없다고 내버리고는 방치하더니 날 거둬준 선대의 목숨도 앗아갔지. 뭐 더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것이다. 합성인간이라고 해도 인격이 인간의 그것에 닿아있다면 원한도 같은 구조로 발생하겠지. 살짝 돌은 놈들은 남이 포석의 금을 밟은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이는데 하물며 그것이 가족이라면. M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그럴 리가.”
...생각이 없는 건가. 역시.
“그걸로 괜찮아?”
“괜찮아.”
“다른 멤버 말이야. 너야 그렇다치고.”
리더라고는 해도 RHC라는 조직자체는 리더에 충성하는 형태의 조직은 아니다. 썸도 그다지 리더십이나 카리스마가 있는 존재라고는 할 수 없다. 링이나 리틀 같은 경우는 그녀도 몇 번 봤지만 염세적인 분위기로 봐서 정의감으로 싸울 것 같지도 않고, 승산 없는 싸움을 반길 캐릭터도 아니다. 외려 그러다 도중에 배신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 것이다. 좋지 않은 의미에서 어른인 남자들의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들이 거대조직과의 싸움에 승산도 없는데 덤벼들까?
“글세.... 뭐 그건 별로 상관없을 걸. 인덱스나, 미들 같은 녀석들이야 아직 어리니 실패해도 어디든 갈 수 있을 나이고, 리틀이나 링은.... 그 녀석들이야 뭐 바보니까. 전에도 질 수 있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뭐라더라? 항상 이기고 살아온 인생이었냐고 되물었던가.”
“염세적인 줄 알았는데 게으름뱅이였구나.”
리더를 보면 알 수 있는 거지만. 이라고 그녀는 덧 붙였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린 썸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렇지 뭐. 그래도 쉽게 질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지. 그놈들이나 나나. 우린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정의의 편이나 성자보다는 뒷골목 양아치들이거든?”
그것도 알고 있어. 라고 그녀가 대답했다. 들이킨 커피는 이제 완전히 식어 크림이 분리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어떤 거야?”
다시 RHC의 사무실. 불법적이고 사람 죽이는 일도 불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치고는 근면한 청년들이 사무실에 각자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았다.
“일단 미리 말해 두겠는데- 우리가 RHC라는 하나의 집단이라는 걸 녀석들이 눈치 챈 것 같다. 우리를 하나하나의 에이전트로 인식한다면 별 문제로 삼지 않을 텐데, 조금 위험해. 따라서 이 일을 마지막으로 한 동안 한국을 뜬다.”
모두들 주말 동안 보고를 받고 각오하고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꼬리가 확실히 밟히기 전에 자르는 건 녀석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그러자 인덱스가 손을 들었다.
“그럼 이번 건 어디까지나 눈 속임이 되는 건가?”
실드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방패를 뒤집어쓴 뱀의 머리가 몇 개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 눈속임이 한계일 것이리라.
“그래. 눈속임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화려하게 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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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만 오래 걸렸지, 분량은 별 볼 일 없는 4화 끝났습니다. 얼추 두명의 배경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닥터 멜리나 프로스트. 나이 불명, 신장 및 체중 불명(신장은 160대 중-후반으로 추정)
최흉으로 불리는 매드사이언티스트. 의료에서 식물학, 메카트로닉스, 전자정보제어까지 못 하는 것을
찾는게 더 빠른 천재. 다만 인간으로서 최악의 도덕률과 행동양식을 가진 것 같다.
사진은 그녀가 미출두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국제재판 당시 몽쉘미상에서 찍힌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는 현재 티벳에서 은거중. 링에게 라이플링으로서의 능력을 부여했다.
링. 라이플링. 작중세계에서의 분류는 신체 개조자.
치명상을 입은 몸을 부활시키기 위해 몸의 일부를 최흉에게 개조받았다.
동시에 추가적인 시술을 통하여 탄도체를 자신의 우완내에서 가속하는 장치(개발코드 배럴Barell)를 이식받았다.
명사수-라기보다 총기류의 달인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으로서 RHC내 두번째 연장자(고아이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다)이다. 실질적으로 양쪽 폐를 모두 상실-인공장기로 대체.
RHC의 에이전트 매니저 M. 차분하고 이지적인 여성으로 정장을 즐겨입는다.
나이는 29세에서 30대초반 사이로 보인다. 리더인 썸과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 계획성있는 사람을 돟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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